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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여덟살 때까지 면 단위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마을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았는데, 목욕탕도 그중 하나였다. 부모님과 함께 멀리 떨어진 시내의 목욕탕에 다녔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목욕탕 입구에서 아빠와 오빠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읍 단위 시골에서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목욕탕에서 선후배는 물론 선생님을 마주치곤 했다. 서울에서는 목욕탕을 골라서 다녔다. 하숙이나 자취를 하느라 욕실이 변변치 않았지만 외부에 좋은 시설이 많았다. 양양에서 살기 시작한 후론 목욕탕과 거리가 멀어졌다. 욕조가 있는 아파트에 살고, 코로나19 유행으로 대중목욕탕 이용이 여의치 않았고, 엔데믹 시작과 함께 목욕탕을 가볼까 하는 시점에 읍내 유일의 대중목욕탕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 최근 목욕탕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공공 목욕탕 건립을 원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다. 기자 시절에 쓴 기사를 계속 떠올렸다. 무주에서 공공건축 실험을 지속한 정기용 건축가의 사례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의 설계를 맡은 그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였다. 그는 면사무소 내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은 목욕탕’을 만들었다. 다양한 전국의 사례들을 더 찾아보았다. 지자체 차원에서 마을 목욕탕, 작은 목욕탕, 복지 목욕탕 등의 이름으로 공공 목욕탕을 운영하는 곳이 꽤 있다. 군 단위 지역이 많고, 의외로 중소도시의 사례도 종종 있다.
시골에는 목욕 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고령 주민이 많다. 욕조가 있고 따뜻한 물을 쉽게 쓸 수 있는 아파트와 달리 물을 데워 써야 하는 노후 주택에서 살다 보면 목욕탕 방문이 필요하다. 노인에게 목욕탕은 여러 장점이 있다. 혈액 순환이나 근육 이완 개선 효과는 관절통이나 근육통을 앓기 쉬운 노년층에게 유용하다. 친목을 도모하는 동네 사랑방으로서 사회적 교류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위생과 건강이 지역의 그것과 연결되는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몸을 씻는 곳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차량이나 버스로 왕복 한시간 거리 목욕탕에 다니는 건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공공 목욕탕 건립이 쉬운 일이 아닌 이유는 지속 가능한 운영을 고려할 때 ‘어디까지가 공공의 영역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이 나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사례를 찾아봐도 대부분 적자 운영을 감수하고 있다. 애초에 이용료가 민간보다 낮고, 최근 몇해 공공요금 상승 추세로 운영비가 올랐다. 어느 지역은 기존 위탁 사업자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영업 포기 의사를 밝혔다. 목욕탕은 시설 조성 비용도 일반적인 회의실, 체육 시설에 견줘 높은 데다 추후 다른 공간으로 변경할 때도 비용과 난도가 높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소셜미디어에서 흥미로운 게시물을 봤다. 강릉시의 한 건축사사무소가 주민과 관광객이 어울려 이용할 수 있는 동네 목욕탕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목욕탕을 지역 변화의 실마리가 되는 앵커 시설(거점 공간)로 바라보는 관점이 반가웠다. 최근 ‘경험 중심의 즐기는 곳’으로 역할을 확장해 화제인 일본 목욕탕 ‘고스기유’ 사례도 떠올랐다.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설과 운영비를 산정해 예산을 투입하는 방향과 주민뿐 아니라 방문객까지 이용 대상으로 확장하고 매력적인 장소로 조성해 매출을 확대하는 방향이 있다. 대개 공공은 전자를 민간은 후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인구와 세수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공공도 후자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시설과 운영비를 쓰는 보수적인 접근에도 지속적인 공공 재원 투입이 자명하다면 보다 적극적인 구상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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