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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김병기 아들 취업청탁’ 의혹 보도와 언론의 정파성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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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김병기 아들 취업청탁’ 의혹 보도와 언론의 정파성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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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당선소감을 밝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김병기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당선소감을 밝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재성|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언론의 인사 검증 기준이 높아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 정부 때와 비교하며 역차별에 항의하는 시민들도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이번엔 ‘개혁성향’ 매체들이 검증 보도를 주도하면서 시민들과의 갈등이 조기에 격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여태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언론은 언론대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각자의 관점에 따라 편견을 강화해온 결과다.



문화방송(MBC)이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기간에 보도한 김병기 의원 부인의 ‘아들 채용 청탁 의혹’이 대표적이다. 엠비시는 김 의원의 부인과 이헌수 당시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통화 녹음 파일(2016년 7월)을 공개하면서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이자 민주당 간사였던 김 의원 아들을 국정원이 특혜 채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도만 보면, 국정원 간부 출신인 김 의원이 국정원 인맥과 정보위 간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아들이 채용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의원이 노무현 정부 ‘국정원 개혁 티에프(TF)’에 참여한 뒤 인사처장까지 지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해직당했고, 부당해고 소송을 통해 승소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엠비시는 보도하지 않았다. 김 의원 아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국정원 공채 시험에서 서류와 필기, 면접, 신원조사까지 통과했지만 불법적인 번복 결정에 의해 탈락했다고 김 의원은 주장한다. 현역 기무사(지금의 방첩사) 장교였던 아들이 불합격한 이유는 아버지가 김병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 아들은 2015년과 2016년에도 국정원에 지원했지만, 각각 면접과 필기에서 낙방했다.



김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개인적 보복 행위가 먼저 있었고, 김 의원과 부인이 항의와 부탁을 했으며, 뒤늦게 국정원이 채용으로 봉합했다고 볼 수 있다. 시민들이 엠비시에 화를 내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일부 사실만 편집해 진실인 양 보도하느냐는 문제제기다. 아마도 김 의원이 지난 13일 원내대표로 당선된 것도 엠비시 보도에 대한 민주당원들의 반발이 결집한 결과일지 모른다.



김 원내대표가 아들의 탈락에 항의하면서 “국정원 개혁”을 거론하며 압박하고, 공식 절차가 아닌 개인적 네트워크로 문제를 해결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엠비시는 이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한국 언론이 흔히 범하는 ‘거두절미의 오류’를 답습했다. 맥락을 제거하고 새로 드러난 사실을 중심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전통적인 보도 행태를 고수하다 대중 설득에 실패했다. 국정원이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녹음 파일을 흘렸다고 의심하며, 엠비시가 공작에 이용당했다고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엠비시의 ‘김병기 의혹’ 보도는 언론의 정파성이라는 주제로도 할 말이 많은 사례다. 윤석열 정부에서 엠비시는 대표적인 반정부 언론으로서 각을 세웠고 특종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파적이며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권교체 이후 공영방송으로서 정파성 논란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욱더, 맥락을 숨기지 말아야 했고 사실을 취사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허상은 무너진 지 오래다. 언론사마다 추구하는 고유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에 따라 모든 사안을 판단하는 언론사가 정파성에서 벗어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겨레 사장을 지낸 미디어경제학자 양상우 연세대 겸임교수는 최근 펴낸 책 ‘언론 본색―가려진 진실, 드러난 욕망’에서 “근대 언론의 출현 이래, 정파성을 탈피한 언론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바꿀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언론(보도)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친민주당 정파성을 숨기지 않는 뉴욕타임스가 나쁜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 이유가 높은 품질에 있다는 얘기다.



전세계 언론인들의 교과서가 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공동저자 톰 로젠스틸은 품질을 높이는 방법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론인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으므로 보도 방법만큼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맥락을 고려할 뿐 아니라 단순한 사실, 맹목적 인용, 기계적 중립을 넘어서야 한다.” 기계적 중립에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판단하되 ‘따옴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사실을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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