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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인구정책·교육 패러다임 [박남기의 미래 나침반]

뉴스1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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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인구정책·교육 패러다임 [박남기의 미래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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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나침반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도구입니다. 방향은 제시하지만, 특정 경로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칼럼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News1 홍예나

ⓒ News1 홍예나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 10년 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를 위해 오늘의 학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최근 한 제자가 인공지능(AI)에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AI가 바꾸는 세상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일상과 미래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경력자에게는 AI가 조수이지만, 대졸자에게는 적수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노동, 인구정책, 교육'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미래 우리 삶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노동 패러다임: 생산과 놀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2024 부산 ICT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AI 취업 패키징을 받고 있다. /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2024 부산 ICT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AI 취업 패키징을 받고 있다. /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빌 게이츠는 최근 여러 인터뷰에서 AI가 의료·교육 분야를 포함한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인간은 근본적인 노동 방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내 주 2일 근무제가 표준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근무 시간의 단축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분배 체계의 재설계와 노동의 의미 자체가 새롭게 정의될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AI로 대체할 수 있는 업무 분야의 신규 채용이 크게 줄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2025.06.02)에 제시된 Revelio Labs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기업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채용을 줄이고 있다. 3년 사이 AI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에 대한 채용 공고는 무려 19% 감소했다.

데이터 관리자, 보안 전문가 같은 IT 분야는 30% 이상 줄어든 반면 정비공, 식당 매니저 같은 '현장형' 직업은 상대적으로 덜 줄었다. 프리랜서, 작가 등 지식 노동자도 AI 도입 이후 일자리와 수입이 감소하는 등 단기적으로 AI가 전반적인 지식 노동자 수요를 줄이고 있다.

빌 게이츠 예상이 맞는다면 미래인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놀이나 여가(레저)에 가까운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노동 공간은 삶의 의미를 구현하는 장이자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이때의 인간은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1938년에 제안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일만 하거나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배우고,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노동 패러다임이 바뀌면 거기에 따라 인구정책 패러다임, 그리고 교육 패러다임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빌 게이츠 예상의 타당성에 대한 범사회적 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낙관적 기대와 달리 AI가 일자리 축소, 임금 격차, 노동 양극화,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침해 등 부정적 영향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하는 새로운 제도와 분배 정책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인구정책 패러다임: 최소한의 적정 인구

만일 빌 게이츠를 비롯한 일부 미래학자들의 예상대로 AI로 인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노동시간과 의미가 바뀐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출생률 제고, 이민 활성화 등의 인구정책 패러다임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상당수 인구가 생산에 참여하지 못한 채 단순 소비자의 역할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현재 시도하고 있는 제반 인구정책은 미래 사회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기대 출생률이 지금보다는 더 높아야 하겠지만,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지구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 가능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적정 출생률이 생각보다는 낮은 수준일 수도 있다. 미래 노동 패러다임에 맞춰 인구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교육 패러다임: 레저형 개인 맞춤식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관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관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교육은 늘 '전인교육'이나 '행복한 시민'을 키우겠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원하는 직업인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 패러다임이 생산과 더불어 진정한 자아실현과 레저(leisure)로 바뀌게 되면 미래인을 육성하는 교육 패러다임도 바뀌게 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레저(여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원래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생각하고 배우는 여유로운 시간'을 뜻했다. 이 말은 라틴어 '리케레'(licere), 즉 '자유롭다'에서 왔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콜레'(scholē), 곧 배움과 사색의 시간을 의미했다. 이 단어가 바로 우리가 아는 '스쿨'(school)의 어원이 됐다.


AI 시대에 사회의 재화 분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학교는 학문과 문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되찾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생산자로서의 역량 개발과 더불어 '놀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에 적합한 놀이 기반 학습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학교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학창 시절을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행복한 시간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량을 갖춘 행복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개인 맞춤형 교육의 핵심 요소는 개별화된 학습 계획, 유연한 학습 환경, 평가와 피드백, 그리고 결과 차원에서 기대되는 학생 주도성 강화 등이다. AI는 이런 변화를 더 쉽게,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AI 시대에 적합한 노동, 인구정책, 교육 패러다임이 너무 환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AI가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이 더 커지거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려면 한발 앞서 미래형 노동과 재화 분배, 인구정책, 그리고 교육에 적합한 패러다임을 탐색하고 구현해 가야 한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를 취득했고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디지털교육분과 위원장, 전남민관산학 교육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 한국교원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고의 교수법, 리더십 등을 주제로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실력의 배신(2018),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2024) 등 20여 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과 1000편 이상의 각종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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