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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으로 더 탄탄해진 삼성과 AMD, 한발 더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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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으로 더 탄탄해진 삼성과 AMD, 한발 더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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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미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MD가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Instinct) MI350' 시리즈에 삼성전자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 12단 제품 탑재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비해 다소 부진했던 삼성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기술력 논란을 해소하고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공급사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두 회사는 모바일 AP에서 시작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전선을 확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평가다.


HBM 대동단결
AMD는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AI 어드밴싱 2025' 행사에서 신형 AI 가속기 'MI350X'와 'MI355X'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HBM3E 12단 제품을 탑재했다고 밝혔다. 그간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던 삼성전자 HBM의 AMD 공급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상연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DSA)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HBM3E는 최첨단 GPU가 요구하는 용량과 대역폭을 충족한다"며 "AMD와의 오랜 파트너십을 통해 혁신을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AMD의 MI350 시리즈는 이전 세대 대비 AI 추론 성능을 최대 35배 향상시킨 야심작이다.


이날 행사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깜짝 등장해 "사양을 처음 들었을 때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기대감을 드러내, AMD의 기술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리사 수 AMD CEO는 "AI 컴퓨팅 시장에 단 하나의 정답지는 없다"며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를 정조준했다.

삼성전자로서는 이번 AMD의 공식 발표가 가뭄의 단비와 같다.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기 위한 품질 검증 테스트가 길어지면서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번 AMD 공급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을 통과할 가능성도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AMD는 이날 행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26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칩 'MI400' 시리즈의 계획도 공개했다. 이 제품에는 6세대 HBM인 HBM4가 탑재될 예정이다. HBM4는 향후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가를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현재 HBM 시장은 '엔비디아-SK하이닉스' 연합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AMD-삼성전자' 동맹이 본격화하면서 시장 구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앞선 1c(6세대) D램 공정과 하이브리드 본딩 패키징 기술을 HBM4에 선제적으로 적용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4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AI 반도체 공급망의 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며 "견고했던 엔비디아-SK하이닉스 동맹에 AMD와 삼성전자가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모바일·AI 넘어 파운드리까지…'공생과 긴장' 역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두 거인, 삼성전자와 AMD의 협력 관계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넘어 인공지능(AI)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로 확장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양사의 동맹은 모바일 그래픽과 AI 메모리 분야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내며 각자의 시장 선도자들을 위협하는 '윈윈(win-win)' 관계를 구축한 반면, 최첨단 공정 기술을 다투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긴장 관계도 공존하는 다층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협력의 시작은 삼성의 모바일 AP '엑시노스'의 경쟁력 강화라는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퀄컴 스냅드래곤 대비 그래픽 성능이 약점으로 지적됐던 삼성은 2019년 6월, AMD와 손을 잡고 돌파구 모색에 나섰다. AMD 역시 2009년 모바일 GPU 자산을 퀄컴에 매각한 이후 사라졌던 모바일 시장에 저비용으로 재진입할 기회를 잡았다.

협력의 첫 결과물은 2022년 1월 공개된 엑시노스 2200이었다. 이 칩에는 AMD의 최신 RDNA 2 아키텍처 기반의 'Xclipse 920' GPU가 탑재됐다. 특히 업계 최초로 하드웨어 가속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과 가변 레이트 셰이딩(Variable Rate Shading)을 지원하며 기술적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야심 찬 데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갤럭시 S22 시리즈에 탑재된 엑시노스 2200은 경쟁작인 퀄컴 스냅드래곤 8 1세대에 비해 전반적인 성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으며, 특히 심각한 발열과 그로 인한 성능 저하(스로틀링) 문제로 비판에 직면했다. 레이 트레이싱이라는 미래 기술을 선점했지만, 당시 이를 활용할 생태계가 부재했던 탓에 이론적 장점에 그쳤다.

엇갈린 평가에도 양사는 2023년 4월, 파트너십 연장을 발표하며 신뢰를 재확인했다. 이후 등장한 엑시노스 2400은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AMD의 차세대 RDNA 3 아키텍처 기반 'Xclipse 940' GPU를 탑재하고, 삼성 최초로 팬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지(FOWLP) 기술을 적용해 전작의 최대 약점이던 발열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그 결과 갤럭시 S24 시리즈에 탑재된 엑시노스 2400은 스냅드래곤 8 3세대와의 성능 격차를 크게 좁혔다. 특히 강점인 레이 트레이싱 성능에서는 대등한 모습을 보였고, 지속적인 부하 환경에서의 성능 유지력과 전력 효율 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성능 추격을 넘어, 특정 영역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전략적 차별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스냅드래곤의 아성을 넘기는 역부족이지만,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여세를 몰아 양사는 모바일 시장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다만 끈끈한 다른 분야와 달리 파운드리 사업에서 양사의 관계는 긴장감이 감돈다. 파운드리 영역이 대표적이다.

AMD는 전통적으로 TSMC에 첨단 공정 생산을 의존해왔으나,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삼성 파운드리를 제2 공급처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최근 업계에서는 AMD가 삼성의 4나노 공정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 해당 칩 주문을 TSMC로 이전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는 파운드리 파트너 다각화라는 전략적 목표보다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을 우선시한 실용적 결정으로 풀이된다.

삼성 파운드리는 명예 회복을 위해 차세대 GAA(Gate-All-Around) 아키텍처 기반 2나노 공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SF2(2나노) 공정의 성공 여부가 AMD와의 파운드리 관계 미래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공생의 긴장

삼성과 AMD의 협력은 '공생의 핵심(모바일 IP, HBM)'과 '긴장의 주변부(파운드리)'라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현재까지 파운드리에서의 일부 마찰에도 불구하고, 양사의 동맹은 각자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다만 삼성의 2나노 GAA 공정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AMD의 신뢰를 회복한다면, 양사의 협력은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설계, 메모리, 파운드리를 아우르는 강력한 수직적 생태계로 발전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반면, 파운드리 관계 회복에 실패할 경우 삼성은 AMD에 부품 공급 파트너로만 남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삼성-AMD 동맹은 일부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측 모두에게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실용적이고 다각적인 파트너십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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