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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지나 서울 도심에 다시 핀 무지개…“우린 서로의 축복이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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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지나 서울 도심에 다시 핀 무지개…“우린 서로의 축복이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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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우리가 때로 서로의 신념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기도와 용기,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앞에서 개신교·가톨릭 성직자들이 성소수자와 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등 “무지갯빛 사람들”을 위한 ‘축복식’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축복 기도문을 함께 읽으며 미리 준비한 꽃잎을 하늘 높이 뿌렸다. 종교의 이름으로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 지금 모습 그대로 소중하다”는 환대를 나눈 이번 축복식은, 이날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시작 행사로 진행됐다. 국내 최대 성소수자 행사인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올해 26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의 일부다.



30도 안팎의 땡볕 더위와 인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옷, 모자, 부채, 양산, 깃발, 양말, 타투 등 무지개색을 띤 온갖 물건을 갖춘 이들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친구 권유로 퀴어퍼레이드에 ‘생애 최초’로 참여한 김지우(가명·19)씨는 “평소 일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무지개’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까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지우씨의 곁에는 무지개귀걸이를 하고 팬섹슈얼(범성애) 깃발을 든 친구 민한서(19)씨가 있었다. 한서씨는 “동네(경기도 용인시)에서 여기 오는 길에 혹시나 (성소수자) 혐오하는 분이 저한테 어떤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축제) 장소에 와서 다른 사람들을 보니 안심이 된다”며 “(이 축제처럼)안전한 환경이 늘어나길,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 중구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에 마련된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입구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서울 중구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에 마련된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입구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응원봉을 든 참가자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자신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수차례 참석한 ‘응원봉 시민’이라고 밝힌 강예린(가명·27)씨는 “(12·3 내란 직후인) 지난해 겨울이 참 살벌하고 추웠는데, 벌써 여름이 오고 이 축제에 무사히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두 손을 맞잡은 연인은 물론 가족 단위 참여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유아차를 끌고 19개월 아이(류홍)와 함께 축제를 찾은 김민아씨는 “퀴어문화축제에 매년 참가했는데 아이와 함께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아이를 만났는데, 입양가족으로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아이가 자신의 결대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직접 디자인한 ‘난♥퀴여워’ 부채 500개를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를 준비한 김민선(32)씨는 부인(29)과 함께 참여했다. 민선씨는 “직업이 디자이너인데 퀴어로서 퀴어굿즈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 트랜스젠더 성별인정법 제정 등을 공약했던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도 축제 현장을 찾아 곳곳에서 환영 받았다.



축제가 열리는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각국 대사관, 기업 등이 차린 70여개 천막(부스)이 설치됐다. 올해는 중앙행정기관 최초로 질병관리청이 단독 천막을 차리기도 했다. 천막에서 만난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축제)에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예방과 ‘프렙’(PrEP, HIV 노출 전 예방요법) 홍보를 하기 위해 참여했다”며 “(질병청에서 준비한) 퀴즈 등 행사에 축제 참가자들이 많이 호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반면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파트너로 참여해온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행사에 불참했다. 대신 인권위 직원 일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앨라이모임’을 꾸려 그 자리를 채웠다. 인권위 앨라이모임 부스에서 만난 최준석 인권위 조사관은 “(인권위) 공식 참여일 때는 그야말로 ‘일’로서 준비해야 했었는데 이번 참여는 자원봉사처럼 백퍼센트 자발적 참여여서 (과거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면서 “인권위 공식 불참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인권위 앨라이모임 부스가 ‘핫’해진 효과도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마련된 질병관리청 부스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마련된 질병관리청 부스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5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의 모습.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일명 ‘남태령 대첩’으로 성소수자들과 연대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도 올해 처음 부스를 차렸다. 이들 부스에선 전여농의 ‘언니네텃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오이를 참가자들과 나눴다. 정영이 전여농 회장은 이날 무대발언에서 “농민들은 남태령에서 인종 차이, 장애 차이, 학벌 차이, 부의 차이, 지역 차이, 성의 차이를 뛰어넘는 평등한 세상을 이야기하며 경험하고 배웠다”며 “낙인과 차별 없는 삶을 위해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2000년 50여명이 서울 대학로를 행진하는 데서 시작한 축제가 10만여명 이상 참여하는 행사로 커진 건 성소수자 가시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법제도 바깥에서 차별과 폭력에 놓여있다”면서, “올해 축제 슬로건을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로 정한 것도, 참가자들이 일명 ‘퀴어 명절’이라 불리는 퀴어퍼레이드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차별과 혐오에) 지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종각역을 출발해 명동성당, 서울광장을 거쳐 을지로입구역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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