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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능 대신 디자인 선택한 애플 "감 잃었나"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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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능 대신 디자인 선택한 애플 "감 잃었나"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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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기 기자]

애플이 12년 만에 자사 운영체제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기기마다 제각각이던 운영체제 이름도 통일했다. 일관된 디자인과 운영체계를 확립해 애플을 재정비하겠다는 건데, 문제는 그러느라 정작 중요한 인공지능(AI)은 뒷전으로 밀어버렸다는 점이다.


애플이 연례발표 행사에서 새로운 운영체제 디자인을 선보였다.[사진 | 뉴시스]

애플이 연례발표 행사에서 새로운 운영체제 디자인을 선보였다.[사진 | 뉴시스]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기능. 전부 새로워졌습니다." 애플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세계개발자회의(WWDC)25'를 열면서 내놓은 카피 문구다. WWDC는 매년 캘리포니아에서 개최하는 애플의 연례행사다. 애플은 여기서 새로운 기기와 신기술을 대중에게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 WWDC25에서 애플은 신제품을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전체 연설 시간의 3분의 2를 '새로워진 디자인'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다름 아닌 애플의 새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인 '리퀴드 글라스'다.


이 GUI가 뭐길래 애플이 이렇게나 공을 들인 걸까. 리퀴드 글라스는 이름이 말해주듯 '액체(Liquid)'와 '유리(Glass)'의 특성을 합친 인터페이스다. 반투명한 유리의 질감을 본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UI를 조작하는 게 핵심이다.


또 빛을 반사하고 굴절시켜 UI가 반투명한 유리의 형상을 지닌다. 이를 통해 UI가 자동으로 주변 환경에 적응해 시시각각 이미지가 변한다. 예를 들어 주변 콘텐츠나 배경화면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거나, 밝거나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는 식이다.


애플이 자사 운영체제(iOS)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건 2013년 iOS7 이후 12년 만이다. 리퀴드 글라스는 아이폰은 물론 아이패드(태블릿), 맥(PC), 애플워치, 애플TV, 비전 프로(MR 헤드셋) 등 애플 생태계 전반에 적용된다. 사상 처음으로 애플의 모든 제품이 동일한 UI를 쓰는 셈이다.


앨런 다이 애플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 부사장은 WWDC25 연설에서 "리퀴드 글라스는 가장 단순한 상호작용조차 마법처럼 느끼게 해주는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인터페이스"라고 말했다.


애플은 이번에 운영체제도 재정비했다. iOS18, 워치OS11, 비전OS2 등 제품별로 제각각이던 버전 이름을 '연도'로 통합했다. 가령, 향후 선보일 새 운영체제는 모두 'OS 26'으로 통일한다. 일관성을 강조하겠다는 취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은 "각 제품군의 OS가 서로 다른 시점에 출발하면서 번호 체계가 뒤섞여 혼란을 야기해왔다"면서 "기기와 플랫폼이 더 일관되고 명확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이름을 통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디자인과 OS에 초점을 맞춘 애플의 혁신은 함의가 크다. '디자인'은 지금까지 애플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였다.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OS 시스템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지금의 애플을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애플이 올해 디자인 개편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디자인 혁신'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겠다는 게 WWDC25에 숨은 애플의 의도란 거다.


문제는 디자인에 역량을 쏟은 애플의 노림수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IT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태블릿 등 전자기기가 얼마만큼 AI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애플의 주요 사업군인 스마트폰 업계에서도 매년 향상된 AI 기능을 선보이는 데 여념이 없다.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 1월 공개한 스마트폰 '갤럭시S25'의 키워드를 '진정한 AI폰'이라고 정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WWDC25에서 애플은 이렇다 할 AI 신기술을 소개하지 않았다. 실시간 번역, 신규 젠모지(일종의 이모티콘)·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피트니스 AI, AI 단축어 기능 등 몇가지 새로운 AI 기능을 공개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기존 기능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업계의 관심을 받았던 'AI 에이전트' 기술 역시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참고: AI 에이전트는 AI가 여러 앱을 동시에 작동해 사용자의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애플 인텔리전스의 핵심 기능으로 손꼽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업데이트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그래서인지 업계에서도 WWDC25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CNBC는 9일(이하 현지시간) 기사에서 "AI와 관련해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WWDC가 지난 10년간 가장 큰 소프트웨어 변화를 내세웠지만, 혁신적이진 않았다"고 보도했다.


마크 거먼 블룸버그 편집장도 10일 자신의 SNS에서 "허황된 약속은 하나도 없었고, 인상적인 새 UI와 중요한 생산성 기능을 선보였다"면서도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질적이고 새로운 AI 기능이 전혀 없다는 점은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주가도 흔들렸다. WWDC25 직후 애플 주가는 전일 대비 1.2% 하락한 201.45달러(약 27만3871원)를 기록했다.


혁신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중의 관심도 이제 '얼마나 예쁘냐'에서 '얼마나 AI가 좋으냐'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의 아이콘' 애플은 AI가 아닌 디자인을 선택했다. 적절한 판단일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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