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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울 땐 그의 보이지 않는 분투도 떠올려주세요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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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울 땐 그의 보이지 않는 분투도 떠올려주세요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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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는 열등감에 잠식당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습니다. ‘나’는 끝까지 미성숙한 자신에게 컨트롤러를 넘겨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속 ‘나’는 열등감에 잠식당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습니다. ‘나’는 끝까지 미성숙한 자신에게 컨트롤러를 넘겨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게티이미지뱅크


진이님, 눈 깜짝할 사이 한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지면이 부족해 못다 한 이야기를 다음 회로 미루며 인사를 드린 뒤로, 저는 틈틈이 진이님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큰 용기를 낸 사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거듭 감사하다고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혹시 받으셨는지….



지난 칼럼(5월16일 텍스트 22면 ‘여러 나 중 가장 의젓한 나에게 조종을 맡기세요’)을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요약해보려 합니다. 진이님은 저의 여러 면모를 부러워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부러움이 종종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고 털어놓으셨지요. 그러면서 저처럼 ‘완벽한 사람’은 자존감이 탄탄할 것 같다며, 저도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자신을 갉아먹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진이님께서 기억하셔야 할 두명의 진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수시로 이것저것을 비교하며 우쭐하게도 절망스럽게도 만들면서 진이님의 자존감을 쥐락펴락하는 비교쟁이 진이와, 진이님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강화해야 할 의젓한 진이.



지난번엔 ‘저 역시 타인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은 적이 있다’고만 간단하게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작정하고 횟수를 센다면 저는 진이님보다 훨씬 자주 타인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뮤지션이자 작가이고 책방까지 운영하는, 세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부러워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서도 부러워하고, 책방을 잘 운영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부러워하거든요. 그뿐이 아닙니다. 저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도, 단란한 가정을 이룬 사람도, 좋은 집에 사는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부럽습니다. 하루도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은 채로 잠든 날이 없어요. 그때마다 꼬맹이 요조와 비교하기 좋아하는 요조가 저를 괴롭게 하지요. 그때 저는 이런 노력을 합니다.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제 안에서 가장 의젓한 요조를 소환합니다. 그가 꼬맹이 요조와 비교쟁이 요조를 어르게 합니다. 부러웠구나. 속상하구나. 괜찮아! 누군가가 부럽고 그래서 속상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야.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부러워질 때마다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분투의 시간을 함께 떠올려보지 않으면 안 돼. 만약 그것이 분투가 아닌 요행이나 단순한 행운 덕이었다고 한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우리의 분투’를 떠올려야 해. 우리가 어떻게 용을 써서 요조를 만들어왔는지 기억해야 해. 그걸 아는 게 우리뿐이잖아, 얘들아!



물론 꼬맹이 요조와 비교쟁이 요조가 계속 삐딱하게 굴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의젓한 요조에게 컨트롤러를 쥐여줍니다. 그냥 계속 짜증 내고 싶구나. 그래, 좋아! 그럼 우리 친구한테 맥주 한잔하자고 카톡을 보내자. 떡볶이에 맥주 마시면서 신나게 욕이나 하자.




정미경 작가의 소설 ‘밤이여, 나뉘어라’는 비극적인 파멸을 겪는 인간의 본질적 허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성숙한 자아가 컨트롤러를 쥐었을 때의 좋은 예를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피(P)에게 사로잡힌 삶을 삽니다. P를 선망하고 질투하며 그를 따라 같은 의과대학까지 진학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P를 따라잡지 못하지요. ‘나’는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꿉니다. 확고한 팬층을 보유할 만큼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P가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엠(M)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나 이름을 날리는 외과의로,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연구의로 지낸다는 근황들을 놓치지 않고 챙기지요. 그러다 스웨덴의 한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나’는 근접국에 사는 P를 이참에 만나기로 합니다. 순수하게 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간 자신이 일궈낸 성과와 커리어를 자랑하고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그리고 거기서 ‘나’는 P의 붕괴를 대면합니다.



저는 P 앞에서 보이는 ‘나’의 ‘선택’들이 굉장히 성숙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나’의 마음은 성숙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지레 포기하거나, 끊임없이 P를 추종하고 비교하며 호승심을 부리고, 사는 내내 P를 의식하며 그에게 으스댈 기회만 노리는 모습들은 유치하고 미숙하기 그지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등감에 잠식당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습니다. ‘나’는 끝까지 미성숙한 자신에게 컨트롤러를 넘겨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 그의 태도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더욱 선명해지는데요. 진이님께서 직접 이 소설을 찬찬히 읽으며 ‘나’의 선택을 신중히 살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의젓한 요조를 소환해 이 글을 썼는데요. 마지막으로 제 안의 가장 유치한 요조가 꼭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한 문장만 허락하고자 합니다.



진이님, 앞으로도 저 계속 좋아해주세요.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요조 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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