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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양다리 아닌 '다리 놓기 외교' 추구해야 [4강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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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양다리 아닌 '다리 놓기 외교' 추구해야 [4강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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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美·日 이후 이뤄진 중국과의 통화
시험대 위에 선 한국의 '실용외교'
중견국 외교 네트워크도 강화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엿새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9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 이은 것으로, 새 정부 출범 직후 한반도 주변 주요 강대국들과 일종의 외교적 상견례를 마친 셈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순서와 관련해 한중 정상 간 일정을 고려해 조율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겠다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 기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친중’ 성향이라는 미국과 일본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통화에서 양국 정상은 경제, 안보, 문화, 인적 교류 등 다양한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질 협력 분야에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했고, 시진핑 주석도 “선린우호의 방향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자”고 화답했다. 특히 양국 정상이 “각계각층의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며 국민감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사드 갈등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양국 국민 간 정서적 거리감을 치유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의 대화는 형식적으로는 우호적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거친 바다를 향해 닻을 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발표보다 빠르게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혼란이 얽힌 지역 및 국제정세에 더 많은 확실성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유지하며, 글로벌 및 지역 산업 및 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함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격화하는 미중 전략경쟁과 관세전쟁 속에서 한국이 보다 명확한 입장을 취하길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과의 조기 소통은 현 정부가 외교 기조로 표방한 '실용 외교'의 첫 행보로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미중 경쟁 속 한국 외교의 균형감각은 더욱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완전히 단절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는 원칙과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국익 중심의 외교를 추진하되,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지 않고 자율적 외교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첫째, 가치와 이익의 균형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 등 자유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삼되, 중국과는 실용적 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이중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외교에서 ‘선택의 강요’가 아닌 ‘자율적 조율’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익 외교다.

둘째, 경제협력의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이다.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첨단기술이나 데이터 관련 민감 산업은 미국 및 우방국과 협력을 심화하되, 소비재·문화·관광 등 비전략 분야는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중견국 외교 네트워크의 적극 활용이다. 호주, 인도, 독일, 프랑스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한국이 단순히 미중 사이의 '샌드위치'가 아니라, 독자적 외교 역량을 가진 중견국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미중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는 실질적 외교 자산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실용 외교는 ‘양다리 외교’가 아니라 ‘다리 놓기 외교’여야 한다. 한중관계는 한미동맹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될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국익을 기준으로 한 명확한 외교 전략이 자리해야 한다. 이번 한중 정상 간 첫 통화가 상호 신뢰의 시작점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 신뢰를 기반으로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전략적 외교를 펼쳐야 할 시점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