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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낙인]③ 이장주 게임특위 부위원장 "새 정부의 정치적 결단 필요해"

디지털데일리 이학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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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낙인]③ 이장주 게임특위 부위원장 "새 정부의 정치적 결단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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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게임은 국내 콘텐츠 수출의 중심이자 문화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중독과 질병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키면서, 게임산업 위축과 이용자 낙인이라는 우려 속에서 제도 도입의 타당성과 사회적 파장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게임 질병코드 도입 논의의 경과를 되짚고, 학술자료 분석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낙인 효과의 실체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게임산업과 사회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합의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학범 기자] "게임이용장애를 두고 논의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쟁점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국내 질병코드에 등재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새 정부의 정치적 결단입니다."

이장주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이하 게임특위)에서 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디지털데일리>와 만나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질병코드 등재 저지 방안에 대해서 이같이 밝혔다. 찬반 양론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책임을 각오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ICD-11)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WHO의 분류를 기준으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고시해 왔는데,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중독'이라는 낙인이 산업 전체에 씌워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산업계와 의학계가 대립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주도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에서 논의를 약 6년 간 진행해 왔으나,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장주 부위원장은 "계속된 논쟁 속에 게임산업과 이용자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어, 정치권이 진영 논리나 인기 경합이 아닌, 사회적 다양성과 과학적 검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한번 도입되면 제외시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합리적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중독은 시간이 흐르면 강해지지만 게임은 아니다

이 부위원장은 게임을 중독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성과 금단 증상이 강해지고 사용량이 증가하는 특징이 있지만, 게임은 그와 정반대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은 초기 몰입도가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게임 이용자들은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 지루해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는데, 이는 자극 수위가 점차 높아지는 중독 증상과는 전혀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게임은 콘텐츠 소비의 한 양태로,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이탈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게임을 '적극적 여가'에 가깝다고 봤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몰입과 선택, 도전이 수반되는 활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이용자도 많다"며, 이를 중독으로 몰아가는 시선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특히 게임 과몰입이되는 시기 개인의 스트레스 상황, 대인관계 문제 등 게임이 아닌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점에서, 게임을 문제 삼기 보다는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나아가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할 경우 원인을 게임으로만 돌리는 기계적 접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게임을 질병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개인이 처한 복합적인 환경 문제를 간과하도록 만든다"며, "본질적인 치유나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쟁점이 없다는 것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의의 한계


이 부위원장은 지난 6년간 민관협의체가 논의해왔지만 정작 쟁점이 무엇인지 정리조차 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합리적 정책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전제가 빠져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게임이란 무엇인지, 게임 이용은 어떻게 정의되는지, 논의의 대상과 조건부터가 불분명하다"며, "문제의 실체를 규정하지 못한 채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기본을 무시한 절차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선결적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된 지난 연구들에 대해서도 "의미가 없다"며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게임이용장애가 정의된 이후에 해야할 논의에 대해서는 질병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과 게임이용에 대한 기준이 마련된 이후 비로소 질병코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며, "어떤 게임이 문제인지, 어느 수준의 이용이 장애로 이어지는지 과학적 합의가 필요한데, 현재는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주장에 근거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게임 과다 이용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WHO는 게임이용장애의 진단 기준으로 게임이용에 대한 통제력 상실, 게임을 우선시하는 행위의 반복, 부정적 결과에도 12개월 이상 게임이용을 지속하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이 부위원장은 "해당 기준은 과다와 과소의 문제가 결합됐다"라며, "게임을 장시간 즐겨도 공부를 잘하거나 일을 잘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고, 게임을 조금만 즐겨도 공부나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면 문제라는 접근인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다 이용이 문제가 아니라 일상 기능의 저하가 본질이라면, 게임이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며, "나아가 해결책은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높이는 방식이 돼야하는데, 현재 논의는 게임만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질병코드 도입이 초래할 미래…산업 축소 우려

이 부위원장이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게임산업과 이용자 전반에 씌워질 낙인효과다.

그는 "게임을 병으로 정의하면 사회적 위상 자체가 추락하면서 관련 산업적, 문화적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라며, "업계 종사자들이나, 꿈을 가진 청년들이 게임 질병코드 분류 이후에는 선택 그 자체로도 부정적 평가가 붙을 수 밖에 없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오늘날 게임의 가치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질병이라는 낙인이 삶의 질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 '발더스게이트3', '피크민블룸' 등의 게임으로 깃발을 만들어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이 깃발을 든 것을 두고 게임이 개인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부위원장은 "사회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인정해주고 존중하며, 개인들의 의미와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본다"며, "개인이 의미를 부여하고 집중하고 있는 것을 타인의 잣대를 들이밀어 판단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회의 방식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질병이란 낙인은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조차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기피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무분별한 질병화는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좁혀지지 않는 찬반 양론 "새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해"


논의가 반복되면서도 쟁점이 정리되지 않고, 낙인 효과까지 우려되는 상황. 이 부위원장은 결국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과학이나 학문적 검토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계속된 논쟁 속에서 피해를 입는 건 산업과 이용자라는 점에서, 누군가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방향을 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질병코드는 일단 도입되면 철회가 어려운 만큼, 정책적 판단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며, "단순히 WHO 권고라는 이유만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근 민주당 게임특위에서 게임 질병코드 등재에 대해서 반대가 아닌 유보라는 정책을 제안한 이유도 신중한 판단과 정치적 결단을 염두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이장주 부위원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제도화가 아니라, 게임에 대한 반복된 중독 프레임을 걷어내는 작업이다"라며, "새 정부가 게임이용장애 국내 질병코드 등재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게임산업의 미래, 그리고 대한민국 문화 정책의 방향이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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