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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낙인]② 과몰입 현상, 원인은 게임 밖에 있다…"질병코드는 진단 아닌 낙인"

디지털데일리 이학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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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낙인]② 과몰입 현상, 원인은 게임 밖에 있다…"질병코드는 진단 아닌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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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게임은 국내 콘텐츠 수출의 중심이자 문화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중독과 질병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키면서, 게임산업 위축과 이용자 낙인이라는 우려 속에서 제도 도입의 타당성과 사회적 파장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게임 질병코드 도입 논의의 경과를 되짚고, 학술자료 분석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낙인 효과의 실체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게임산업과 사회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합의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학범기자]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게임산업과 이용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쟁점과 논란을 낳고 있다. 특히 게임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이용자들에게 잠재적 환자라는 부정적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가 초래할 사회적 반향에 대한 분석이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최근 연구들은 게임 자체 보다는 개인이 가진 기존 정신적 문제나 환경적 요인이 과몰입의 주요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대신, 근본적 원인 파악과 개인 환경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 연구의 공통된 입장이다.

◆"게임 과몰입, 기존 정신질환이 원인"

최근 국내외 학술 연구자들은 게임 과몰입의 원인을 게임 자체가 아닌 기존 정신질환에서 찾고 있다.

한국게임학회 논문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게임 과몰입을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알코올 사용장애, 우울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는 사람의 게임중독 위험군 분포가 높았다. 이는 게임이 중독을 유발하는 원인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정신적 불안정성이 게임 과몰입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학업 스트레스와 강한 연관성을 가진다. 2020년 서울시립대학교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총 582명의 청소년을 표본으로 추출해 분석한 결과,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청소년일수록 게임에 더욱 몰입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부정적 부모와 자녀 간 부정적인 의사소통이 게임 과몰입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밝혀졌다. 부모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청소년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게임 의존도를 높인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게임 과몰입을 독립된 질병으로 접근하기보다, 개인의 환경적, 심리적 문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를 결정하기 전에 기존 정신질환과 환경적 문제 해결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8.8조원 피해 우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도입이 가져올 경제적 피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 2022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는 질병코드 도입에 의한 산업적 파급효과로 국내 게임산업이 1차 연도에 전체 산업 규모가 20% 정도 축소되고, 2차 연도에 약 24%가 축소될 것으로 추정됐다. 총 8조8000억원 규모의 게임산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나아가 일자리도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게임산업의 평균 매출액이 약 20% 감소할 경우 줄어드는 취업 기회는 3만6382명이며, 2년 간 줄어드는 취업 기회는 총 8만39명으로 추정됐다. 단순히 산업적 손실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사회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피해는 산업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혁신학회지의 연구에서는 아동의 게임이용장애 치료 비용 부담이 월 평균 15만5100원으로 추정됐으며, 연간 치료비 총액이 1236억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치료비와 비교했을 때 4.3배가 넘는 금액으로,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결국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손실을 고려할 때, 정책적 결정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 향유권 침해 논란의 헌법적 쟁점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도입은 헌법적으로도 심각한 쟁점을 야기한다.



법학계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가 헌법적으로 보장된 문화향유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황성기 한성대학교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가 헌법의 기본원리인 문화국가원리를 위반하고, 과잉금지원칙에도 어긋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또한 문화콘텐츠산업에 관한 현행 법체계와의 불일치 문제도 제기하면서 체계 정당성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화향유권의 제한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문화적 표현과 창조적 활동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게임을 질병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문화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헌법적 기본권 제한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선행되야 하며, 엄밀한 헌법적 기준과 검증 철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 이용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우려

이용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효과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논의에서 가장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다.

미래사회전략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 이용장애가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인정될 경우 일반인의 게임 이용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게임이용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문제적 게임 이용 집단의 게임 의향이 줄지 않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게임중독 진단이 청소년들의 자아 형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됐다. 게임을 질병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키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낙인 효과는 결국 이용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자신의 게임 이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기 낙인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게임 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를 결정하기 전에, 보다 정밀한 사회적, 심리적 영향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질병코드 논쟁, 미래를 위한 신중한 접근 필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봤을 때,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 논의는 단순한 학술적 논쟁을 넘어 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게임이용을 둘러싼 복합적인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게임 자체만을 병리화하는 접근은 현상 해결을 보다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적 결정 과정에서는 게임 과몰입의 근본적 원인을 철저히 진단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지원과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초래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과 문화적 권리 침해를 신중히 검토해, 산업적 성장과 개인의 문화 향유권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이용자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포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게임 중독'이라는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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