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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채기-묻기-이어지기 그리하여 서로 출렁이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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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도 있다 l 김현 지음, 낮은산(2025)

우리 반에도 있다 l 김현 지음, 낮은산(2025)


평론가라는 이름을 달고 이러저러한 글을 쓰고 말을 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어떤 직업이든 쉬운 일은 없고,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게 익어가는 마땅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누군가 열심히 굴리고 지은 열매를 두고 “그 가치, 우열, 미추 따위를 논하여 평가”하는 내 일과 그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늘 곤혹스럽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어딘가에 들이민 소위 ‘평가'의 잣대에서 나는 자유로운가. 나는 얼마만큼 섬세한가. 궁극적으로 나는 살리는 말과 글을 짓고 있는가. 생각이 이어질수록 뒤로 물러나게 된다. 계속 쓸 수 있을까, 혹은 계속 써도 괜찮은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현의 ‘우리 반에도 있다’는 살리는 말과 글을 고민하던 나에게 반짝이는 별처럼 찾아왔다. ‘미스 김'이라는 말을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오래 공글린 그는 그 궁리가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타인이 함부로 붙인 미스 김을 둘러싼 거듭된 질문은 그를 복잡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는 이제 “자기 돌봄의 달인이 되고자 하는 비청소년 퀴어”로 살면서 다양한 알아채기-물어보기-이어 주기를 ‘수행'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행위자 혹은 수행자로 ‘동작'하는 글쓴이가 보였다. 거칠고 소란한 세상 속에서 그가 어떻게 불과 재의 심연을 건너왔는가를 따라가다 보면, 나직한 목소리와 가만한 마음의 움직임이 시선 끝에 잡힌다. 소란을 잠재우는 가만한 동작과 부드러운 마음의 움직임을 좇다 보면 그가 왜 ‘애써 성공하기보다 느리게 실패하고 싶은 바람'을 갖게 되었는지, 왜 ‘선뜻 결정하지 않고 망설이는 것이 슬기로운 삶의 자세'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의 글은 독자와 가만히 연결된다. 그의 실수와 실패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긴 시간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고 인색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을 돌보고 아끼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그의 글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아, 나는 그간 난망한 일을 꿈꾸었구나.



그는 “평가를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공을 넘겨야 할 네트를 앞에 두고 나란히 선 선수들”이라 말한다. 상대방이 아니라 나란히 선 선수들이라는 앎. 나와, 나란히 선 사람들을 아는 것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그의 말대로 알아야 보이고 들리고 느낀다. 알기 원하는 마음, 물어보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연결되고 싶은 마음. 상대가 아니라 서로가 되어 함께 출렁이고 싶은 마음. 서로 출렁이는 마음이 되어 마침내 ‘우리 반에도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죽지 말고 살아 있자’며, 서로에게 손 내미는 세계를 만들자고 말하는 간절함.



그의 알아채기-물어보기-이어 주기가 누군가에 가 닿기를.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퀴어 청소년과 비퀴어 청소년들에게 우리 여기 ‘있다'고, 그러니 죽지 말고 함께, 서로 출렁이자고 말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와, 나란히 선 당신들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출렁이기를, 때론 삐걱대고 때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란한 어깨를 거두지 않기를. 가만히 빌어본다.



송수연 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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