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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지난해 6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긴급 간담회'를 주재하기 전 모습.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은 대선 기간 이 대통령의 외교 자문그룹 글로벌책임강국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전민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4~25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 여부를 고심 중인 가운데, 대통령실 내부 기류가 당초 ‘무리하지 말자’는 신중론에서 ‘적극 검토’로 바뀌었다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12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토 정상회담 참석과 관련해 대통령실)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초반엔 부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참석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며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민주당 관계자도 “사실상 참석쪽으로 기운 것으로 아는데, 최종 결정은 대통령님의 몫”이라고 했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G7 정상회의(15~17일)에 참석할 경우, 나토 정상회의까지 연달아 참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조기 대선을 통해 인수위 없이 정부가 곧장 출범한 탓에 다자외교를 준비할 시간이 촉박한 데다, 새 정부의 국무위원은 물론 대통령실 참모진 인선도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본인도 대선 기간이던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G7·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해 “국내 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한데, 꼭 그래야(참석해야) 할지 아닐지 고민”이라며 불참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선 전후 이 대통령 주변에선 “나토는 가지 마시라”고 조언하는 인사가 다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었다. 정 전 장관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직속 외교 자문그룹인 글로벌책임강국 위원회 고문이었는데, 대선 직전 이 대통령과 통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당시 이 대통령이 “잘하면 대통령에 당선될텐데, 취임 직후 G7에 가야 하느냐”라고 물었고, 이에 정 전 장관은 “가시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곧바로 이 대통령이 “나토는요”라고 묻자 정 전 장관은 “나토는 가지 마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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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미소 짓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여권 내 대표적인 ‘자주파’로 꼽히는 정 전 장관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에게) 나토는 지금 우크라이나 지원 조직으로서 반(反)러시아 색채를 띠고 있다. 윤석열 정권에선 확실한 미국 편향 외교를 했기 때문에 계속 참석했지만, 자꾸 거기 참석하는 건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려는 일본의 흉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반면 G7에 대해선 “주최국인 캐나다가 ‘K-데모크라시’에 대한 존경심이 있고, 잠수함 건조를 하려고 해서 한국과 조선업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하다”며 “참석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취임 직후엔 용산 대통령실의 열악한 상황이 ‘불참론’의 또 다른 근거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 정부 대통령실 ‘어공’(정무직 공무원) 80여명이 사직서를 내지 않는 등 인력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인사 검증을 비롯한 업무 지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통령실 인선이 지연되면서, 외교·안보 업무의 핵심 참모인 안보실 1·2·3 차장조차 12일 현재 공석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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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이 대통령의 정상 외교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이런 분위기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9일), 중국(10일), 체코(11일) 정상과 전화 통화를 잇달아 진행하면서 대통령실 내부에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자외교 무대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로부터 이재명 정부의 대미·대중 외교노선과 관련해 불필요한 의구심을 살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12·3 계엄사태 이후 6개월간 스톱된 ‘정상 외교’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G7뿐만 아니라 나토 초청에도 응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힘이 실렸다고 한다. 특히 나토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태 4국(IP4)을 매년 초청해 왔던 점도 기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여권에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역할도 주목한다. 위 실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로 분류됐고,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 전략을 가까이서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겠다”고 밝히고, 첫 정상 통화를 보수 정권과 같은 ‘미국→일본→중국’ 순으로 배치한 데도 위 실장의 조언이 있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여전히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국무총리가 임명되지 않는 등 조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간 국내를 비우는 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또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는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자주파’의 주장도 건재하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친명계 중진 의원은 “이 대통령은 반대되는 참모의 의견을 두루 들으며 결정하지만, 결국 이념보단 무엇이 실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최종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성지원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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