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식당에서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12일 에스엔에스(SNS)에 공개했다. 이재명 대통령 에스엔에스 갈무리 |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시작한 정부의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선거 전부터 약속했던 3대 특검법의 통과는 물론이고 국내 주가지수가 이전 윤석열 정부 이후 최고점을 돌파했으며 오랜 시간 접경지대 불안과 군사 긴장감을 높였던 대북 확성기 방송도 전격 중단되었다. 취임 첫날부터 보여준 빠른 정책 결정과 집행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실용적 가치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억제를 천명하기보다는 국내 주식시장의 개선을 통해서 대체 투자 수단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이전 진보 정부와는 결이 다른 정책 유연성을 보여준 것이지만, 이를 완전한 정책으로 체계화하기 전이라도 대통령이 주식거래소에 직접 방문해서 거래 시장의 활력을 높이는 모습은 흔히 말하는 ‘선비 노릇’에 갇혀 있지 않은 새로운 민주당 정부의 신선함으로 전해진다. “군대에는 저항할 수 있겠지만, 때를 맞이한 아이디어에는 그럴 수 없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남긴 말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진보 정권의 오랜 숙제인 언론개혁에 있어서도 이재명 정부의 실용성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다. 어쩌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기자들을 비추는 카메라를 설치해서 대통령실의 대변인뿐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기자들도 화면에 보이게 하겠다는 아이디어에서부터 현 정부의 언론개혁은 벌써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브리핑룸 카메라가 언론개혁에 대한 본질적이거나 핵심적인 사안은 아니겠지만, 비록 본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론에 대통령실의 대답을 요구하는 것에 걸맞은 책임을 부여하는 데 누구라도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당장 실현될 수 있고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현 정부의 실용적 사고가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몇번의 진보 정권에서 이른바 주류 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바람직한 긴장 관계라기보다는 극한 적대 관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번번이 정부의 노동, 통일, 경제 개혁 정책들은 보수 언론의 프레임 속에서 동력을 잃어버렸으며, 때로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누군가 목숨을 잃을 정도의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도 바로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보 정권은 자신의 성패는 차치하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언론의 정권에 대한 적대성에 어떻게 맞대응할 것인가가 숙명적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초에는 보수 일간지의 막대한 영향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타협적 관계를 시도했으나 보수 언론의 공격이 계속되자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대응 카드로 선택했다. 언론사 사주 4명을 구속까지 시키고 무소불위의 성역에서 내려오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수 언론의 진보 정권에 대한 극심한 반발이 고착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언론개혁의 성공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신문사에 대한 가판 구독을 중단시키고 기자실 폐쇄로 대변되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주류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정상적 긴장 관계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지금이야 그의 제도적 개선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특유의 원칙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언론의 반발을 불러오고 시민사회의 대중적 설득력을 얻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문의 자연스러운 쇠퇴 속에서 언론개혁의 주요 대상이 방송과 온라인 영역으로 옮겨졌으나, 정작 공영방송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많은 약속과 공언을 하였음에도 실제로는 몇몇 방송사 사장이 바뀐 것 말고는 아무런 개혁도 실행하지 못하며 결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어지러운 환국을 여전히 국민들에게 남겨놓았다.
이제는 이재명 정부의 시간이다. 방송3법을 포함한 언론개혁의 숙제가 놓여 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적 사고가 개혁에 대한 당위성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끌어내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전 정부의 안타까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송3법을 포함한 언론개혁의 당위성이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합리성을 담보하여 시민사회에 대한 설득력과 현 정부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지속될 수 있는 정당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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