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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높을 땐 ‘짝퉁’도 찾는다…‘대통령 시계’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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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높을 땐 ‘짝퉁’도 찾는다…‘대통령 시계’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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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큰 인기를 끌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시계와 (오른쪽)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시계를 보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왼쪽) 큰 인기를 끌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시계와 (오른쪽)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시계를 보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시계’ 제작을 지시했다고 11일 밝혔다. 역대 청와대·대통령실마다 제작·배포되며 ‘대통령 굿즈’ 역할을 톡톡히 해온 대통령 시계는 해당 정권의 흥망성쇠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러 제안을 경청한 끝에, 의미와 실용성 모두 담을 수 있는 선물이 적합하겠다 판단해 가성비 높은 대통령 시계 제작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대통령이 이번엔 대통령 시계를 제작하지 않을 거란 보도들이 나오자, 대통령이 바로 잡은 것이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제작 여부를 밝힌 이유는 대통령 시계가 오랜 시간 국민적 관심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시계를 처음 제작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황금색 봉황 문양 아래 ‘박정희’ 서명을 넣었다. 이후 전두환씨도 만들었다. 군부 정권 당시 대통령 시계는 일종의 하사품으로 여겨졌고, 권력과의 ‘연줄’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시계는 지금도 중고시장에서 거래가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시계. 한겨레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시계. 한겨레 자료사진


이후 대통령들도 대통령 서명을 새긴 손목시계를 만들어 청와대 방문객과 국외 손님 등에게 선물했다. 뒷면에 문구도 새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계엔 ‘올바른 길을 걸어갈 땐 거칠 것이 없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시계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이 각인됐다.



노 전 대통령의 시계는 다른 때와 달리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프레임으로 제작됐는데, 여전히 인기가 많아 중고거래 누리집엔 ‘구합니다’라는 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축하하며 취임 초부터 다량의 대통령 시계를 풀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모자란다는 듯, 임기 초반인 2009년 서울 청계천 노점 상인들이 대통령 서명을 본떠 담은 모조품 시계를 팔다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임기 말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이명박 시계’는 중고시장에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대통령 지지율과 시계의 인기는 정비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시계는 집권 초반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불렀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소속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대통령 손목시계 10개씩을 선물하며 “(선거에)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시계를 지역구 유권자에게 선물할 경우 기부 행위로 간주돼 선거법에 위반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회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2020년 3월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 때 찬 시계. 연합뉴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회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2020년 3월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 때 찬 시계. 연합뉴스


박근혜 시계는 국내 업체 ‘로만손’이 제작해 납품했는데, 로만손이 대통령 시계 관련 입장을 낸 일도 있었다. 2020년 3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회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기자회견을 하며 기존 기념 시계와는 다른 ‘금장 박근혜 시계’를 차고 나와서다. 로만손은 ‘자사가 제작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한때 ‘대통령 대행 시계’라는 것도 존재했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새겨 만든 것이다. 권한대행 시계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시계.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시계. 한겨레 자료사진


이후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른바 ‘이니 시계’는 그야말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니 시계를 구할 방법이 없냐’는 문의가 빗발쳤고 청와대 직원들이나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도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규에 따라 시계 수급을 깐깐히 관리했고,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여당 의원들도 시계를 받지 못했다.



‘이니 시계’의 원가는 4만원 대였다. 뒷면엔 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사람이 먼저다’가 새겨졌다. 문자판을 백색 자개로 만드는 등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2017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17 위아자 나눔장터’에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증한 ‘1호 문재인 시계’ 한 쌍이 42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뒤 ‘윤석열 시계’를 공개했다. 2022년 5월25일 대통령실은 “시계 디자인은 윤 대통령의 실사구시 철학을 반영해 심플하면서 실용성에 중점을 뒀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뒷면의 문구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였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시계’ 가격은 급락했다. 그가 파면된 뒤 한덕수 권한대행은 시계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시계 제작 계획을 알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만큼 그에 걸맞게 정성껏 준비하겠다.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기실 수 있는 선물이 되게끔 하겠다. 기대해 주셔도 좋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본인은 이랜드 오에스티(OST)에서 나온 ‘달빛정원 블랙레더’를 찬다. 2019년 출시된 제품으로 정가는 5만9900원이다. 온라인에선 3만원 후반대에 판매되는데, 이 대통령 당선 뒤 화제가 되면서 현재 일시 품절 상태다. 오에스티 매장들은 최근 온라인 판매 문구에 ‘대통령’을 넣은 뒤 ‘7월 말 예약 발송’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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