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면 물가가 올라간다. 금리인하든 재정투입이든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결정을 하기 전에 물가의 흐름을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물가 억제와 경기 활성화를 동시에 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잡지 못한 '두마리 토끼'다. 이 대통령의 구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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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물가 안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사진|뉴시스] |
"최근에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고 하더라. 라면 한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인가." 지난 9일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물가 문제가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면서 "물가 안정 대책을 빨리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 대통령의 질문은 국민들 입장에선 '늦어도 너무 늦은' 질문이다. 가공식품부터 외식메뉴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서다. 팬데믹 이후 심화한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기인한 각종 원재룟값의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부추겼다. 2020년 이후 지난 5년간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2%(2020년 0.5%→2021년 2.5%→2022년 5.1%→2023 3.6%→2024년 2.3%)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해 12ㆍ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ㆍ달러 환율이 1480원대까지 오르면서 가까스로 안정세를 찾던 물가는 다시 오름세를 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몇 식품ㆍ외식업체는 정권 공백기를 이용해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1%대(이하 전년 동월 대비)에 머물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4월 내내 2%대(1월 2.2%ㆍ2월 2.0%ㆍ3월 2.1%ㆍ4월 2.1%)를 기록했다. 5월에야 1.9%로 내려왔지만, 누적된 물가 상승에 서민들에겐 라면 한봉지부터 김밥 한줄까지 부담스럽기만 하다.
일례로 올해 5월 기준 라면(가공식품) 물가지수는 124.64로 1년 전 117.36보다 6.2% 올랐다. 비스킷(9.6%), 아이스크림 (5.2%), 스낵과자 (3.4%) 등의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외식으로 먹는 라면 가격도 껑충 뛰었다. 라면(외식) 물가지수는 1년 새 3.8% 상승했다. 햄버거는 1년 새 8.8%, 치킨은 4.7% 김밥은 4.2%, 냉면은 3.2%씩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9%)을 훨씬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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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달걀 가격이 껑충 뛰어오르면서 '에그플레이션(달걀+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이후 달걀 한판(이하 특란 30구) 가격이 7000원대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축산품질평가원에 따르면, 9일 기준 달걀 한판 가격은 7034원으로 평년(6645원) 대비 5.8% 비싼 수준이다.
문제는 달걀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4일 발표한 '6월 축산관측'에서 "6월 달걀 산지 가격은 1850~1950원(특란 10구)으로, 전년 동월(1646원) 대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산란계의 고령화와 질병 발생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런 상승세는 달걀을 사용하는 외식 메뉴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물가안정책을 찾으라'고 강하게 주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이재명 정부는 경기 활성화와 함께 물가도 잡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 중심엔 추경이 있다.
이 대통령은 비상경제점검 TF 2차 회의에서 "경기 회복과 소비 진작을 위해 추경을 속도감 있게 편성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1차 추경안(13조8000억원)에 이어 정부의 2차 추경 편성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추경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물가 억제는 대개 공존하기 힘든 목표다. 추경을 통해 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물가를 쥐어짤 수도 없다. 기업을 압박하면 제품가격이 당장 떨어질 순 있지만 그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기업이 소비자가격을 낮춘다는 명분으로 협력업체에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인지 물가를 잡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경제학) 명예교수는 "지금 물가가 높은 이유는 환율 등 원가 상승으로 인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쉽게 물가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등 기업을 압박해 가격 상승을 늦출 수 있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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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란 가격이 오르면서 외식 물가가 상승하는 에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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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지금은 추경과 재정정책을 사용해 경기를 방어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경기 활성화와 함께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추경의 규모는 25조원 정도인데 이미 14조원 규모의 1차 추경을 마련했고, 20조원을 2차 추경을 추진 중이다.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풀리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무조건 돈을 푸는 것보다는 산업과 저소득층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돈을 푸는 추경으로는 경기 회복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 역시 "경기 회복과 물가 안정을 한꺼번에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 수입품목 확대, 관세 인하 등을 추진하고 자영업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정교한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경을 앞두고 물가를 잡겠다는 이재명 정부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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