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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던진 경고… "겸손하라"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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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던진 경고… "겸손하라"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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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 없는 정치는 파면될 수밖에
검찰·사법부 모두 직면한 신뢰 위기
모든 권력은 국민 앞에서 '겸손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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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존선겸(慾尊先謙·존경받고 싶다면 먼저 겸손하라).

공직자 사무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지키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권력 크기가 커질수록 ‘겸손’과 거리는 멀어진다. ‘겸손하라’는 시대를 관통하며 권력을 손에 쥔 자들에게 보내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이번 대선 결과도 ‘겸손의 결핍’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분명히 드러났다.

협치가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끝에 위헌적 비상계엄이 있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파면됐다. 국민 대다수 뜻에 어긋나게 행사된 겸손하지 않은 권력의 말로였다. 이러한 권력과 결별하지 않고, 제대로 된 반성도 없었던 국민의힘은 누가 예상하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권력을 되찾기는 어려웠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대통령은 무난히 당선되었으나 예상했던 득표율 50%를 넘기지 못했다. 입법권과 탄핵소추권의 과도한 남용, 입법권과 행정권이 한 몸인 거대 권력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 결과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과도한 대립과 책임 전가, 일방통행식 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다. ‘겸손하지 않은 거대 양당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경고장이다.

검찰과 사법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검찰은 정치와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검찰권 남용 논란으로 사회적 갈등이 촉발되었다. ‘거악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지탱해 오던 특수수사는 정치 수사에 천착하는 우를 범하는 바람에 검찰이 공정한 법의 집행자인지, 정치 플레이어인지 헷갈리게 했다. 사법부도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검찰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고 개혁 대상이 된 근본적 이유는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검찰 원로의 토로가 떠오른다. 검사와 판사는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무기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일 뿐, 정치적 심판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 권한에 대해 경계하고, 법 집행이 어떤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검찰과 사법이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소멸할지도 모른다.

정치권 또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경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승자는 단지 상대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어 권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은 것일 뿐, 절대적 정당성과 무한한 통치 권한을 부여받은 게 아니다. 국정운영에 있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과의 소통과 타협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겸손한 정치인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안다.

‘겸손’은 권력자가 DNA에 깊이 새겨야 할 기본이다. 겸손한 리더는 오만하지 않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국민은 그런 리더의 결정을 신뢰하고 지지한다. 모든 권력이 한곳으로 쏠리는 듯한 지금이 ‘가장 겸손하게 권력을 행사’해야 할 시기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치’와 ‘사법’ 모두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 앞에서 겸손한가? 권력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았다는 점을 진정으로 자각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김후곤

김후곤


김후곤 변호사·전 서울고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