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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까지 동원한 트럼프의 '막장 정치'...사람답게 대하지 않는다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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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까지 동원한 트럼프의 '막장 정치'...사람답게 대하지 않는다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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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 진영은 LA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이민자 단속 항의 시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연방 방위군을 동원했다./LA=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 진영은 LA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이민자 단속 항의 시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연방 방위군을 동원했다./LA=AP.뉴시스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2025년 초여름 로스앤젤레스(LA) 중심가에 난데없이 군홧발 소리가 울린다. 불타는 건물도, 약탈도, 무장 폭도도 없다. 단지 "우리 이웃을 돌려달라"는 1천여명 남짓한 숫자의 시위대가 피켓을 흔들고 목청을 돋울 뿐이다. 그럼에도 연방정부는 주 방위군을 투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 진영은 LA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이민자 단속 항의 시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법적 근거가 모호하게 연방 방위군을 동원했고 심지어 국방장관은 LA에서 100여마일(약 161km) 거리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 부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강경 메시지까지 쏟아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개빈 뉴섬 주지사, LA의 카렌 배스 시장은 입을 모아 "지금 필요한 건 대화이지 군대가 아니다"라고 연방정부의 강경대응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주지사는 연방 대통령을 고소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눈썹 한오라기 꿈틀대지 않는다. '질서'를 가장한 이 대응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LA다운타운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머지 않은 거리의 코리아타운에서 지켜보는 한인동포들에게는 악몽 같은 기억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1992년 4월 29일. 코리아타운을 포함한 LA 전역이 폭동에 휩싸였을 당시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방위군과 경찰력을 보내는 데 무려 사흘이나 걸렸다. 그새 수많은 상점이 불타고, 한인동포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생업을 지켜야 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은 LA폭동 당시 '책임 방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33년. 이번에는 정반대다. 무장 폭동도 없는 평화 시위 현장에 군대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총칼 없는 피켓 앞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위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공포'를 정치와 통치의 연료로 삼고 있다.

그가 반복하는 키워드는 '국경', '불법', '범죄', '혼란'이다.이민자를 위험 요소로 상정하고, 자신은 그로부터 미국을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것이다.자신에게 표를 찍은 백인 기득권층과 중남부 시골의 노동자들에게 선거운동 내내 각인했던 '국뽕 이미지'다. 하지만 그가 겨누는 대상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고국을 떠나와 LA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웃, 자녀를 키우던 부모, 학자금 융자를 갚으며 일하는 청년들이다.


LA는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도 이민자가 집중돼 있는 도시다. 공공서비스 안내전화에 영어 외에도 한국어를 포함, 7~8개국 언어가 제공될 정도로 다양한 이민자가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다. 이민자의 딸과 아들이 자라는 도시, 라티노와 아시아계, 흑인과 백인이 어깨를 맞대는 이 공간은 미국이 자랑하는 다원성의 축소판이다. 이곳에 파견된 방위군은, 단순한 공권력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군홧발을 앞세워 지지층의 박수를 구걸하는 트럼프의 정치적 꼼수는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33년 전 LA폭동 당시 정부는 군대를 보내지 않아 욕을 먹었다. 2025년의 오늘, 정부는 군대를 너무 쉽게 보내 욕을 먹는다. 한쪽은 외면, 다른 한쪽은 과잉.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존재는 늘 이민자다. 역사는 말한다. 군홧발로 시민의 분노를 밟을 수는 있어도, 그 분노의 원인을 지울 수는 없다고. 트럼프는 방위군을 보내 질서를 획득했을까. 아니다. 그는 공동체의 신뢰를 저버렸다. 신뢰가 사라진 정치는 무너지고 만다는 건 작금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시위 현장의 한 젊은이가 들고 있던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인간도 불법일 수 없다(No human being is illegal)."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대계 작가 엘리 비젤이 일갈했던 이 단순한 문장이야말로 방위군의 육중한 장비보다 더 무겁고 단단한 메시지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범죄경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받은 연방이민세관 단속국은 합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민자로 보이는 무고한 시민들을 무작정 잡아들이고 있다. 법적 신분을 떠나 인간성을 손톱만큼이라도 존중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LA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람 대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결과가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참혹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지는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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