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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민권 요건 완화 국민투표…저조한 투표율에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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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민권 요건 완화 국민투표…저조한 투표율에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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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투표율이 30%에 그쳤다. 8일 로마의 한 투표소 풍경.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시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투표율이 30%에 그쳤다. 8일 로마의 한 투표소 풍경. 로이터 연합뉴스


이민자 수용에 부정적인 우파 정권이 집권 중인 이탈리아에서 시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투표율 저조로 통과되지 못했다.



9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하루 전인 8일부터 이틀간 치러진 국민투표의 투표율이 30%에 그쳤다. 이탈리아 헌법상 투표율이 50%를 넘어야 국민투표가 유효하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부당해고자 복직 보장 등 노동관련 법안 4개도 안건에 부쳐졌지만, 이슈가 되지 못했다.



국민투표에 부쳐진 국적법 개정안은 시민권 부여를 위한 의무 거주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완화해 이민자에게 시민권 부여 문턱을 낮추는 것이 골자다. 현재 이탈리아의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연속 10년간 이탈리아 내에서 합법적 거주를 하도록 1992년 제정된 법으로 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27곳 중 시민권 취득 요건 문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법안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에서도 일반 귀화를 위한 거주 요건은 5년 이상이다.



이번 국민투표는 중도 좌파 야당과 시민사회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 이민자의 자녀가 포함된 여자배구 대표팀이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자, 시민권 취득 요건 완화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좌파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는 이탈리아에서 자란 이민자 출신 자녀에게 시민권 부여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파 정치인들은 이민자의 자녀를 이탈리아 시민으로 쉽게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만약 국민투표가 통과됐다면 이탈리아에 5년 이상 거주한 이민자 250만명이 즉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설명했다. 이탈리아에서 자라고 교육받았지만 법적으로 여전히 외국인인 이민자의 자녀들이 점점 늘어, 현재 이탈리아 학교에 다니는 전체 아동의 약 11%가 외국 국적자다.



야당은 이번 국민투표를 정권 심판으로 규정하고 투표를 독려했으나, 강경 우파 정권은 국민에게 기권을 촉구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투표소에는 방문했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번 국민투표를 보이콧했다. 멜로니 총리와 그가 이끄는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은 이민자 수용에 강력히 반대하는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다. 멜로니 정권은 당선 후 다른 우파 정당들과 연정을 맺어 상·하원에서 모두 과반수의 의석을 장악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영 방송 라이(RAI) 등 주류 매체들은 국민투표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극우 성향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국민투표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명확해지자 “시민권은 선물이 아니다. 이탈리아 시민이 되기 위해 더 엄격한 규칙이 필요하다”며 법을 강화할 것이라 말했다. 이민법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역사의 올바른 편’ 대표 살한은 “우리의 싸움과 운동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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