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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꾼’ 정보라 “새로운 대한민국, 아무도 고공에 오를 필요 없는 나라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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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꾼’ 정보라 “새로운 대한민국, 아무도 고공에 오를 필요 없는 나라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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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내란 특검보 참석' 내란 재판 '묵묵부답' 출석
정보라 작가. 정혜란 제공

정보라 작가. 정혜란 제공


“대선도 끝났고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되었으니 고공의 동지들이 어서 내려올 수 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지들이 이겨서 내려오고 나면 다시는 아무도 고공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설가 정보라(49)는 올해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간 <아이들의 집> 출간을 기념한 북토크에 연사로 참여한다. 북토크에 참가하는 이들은 직함을 적는데 보통 작가나 시인, 평론가 등이다. 정보라는 ‘데모꾼’으로 적었다. 데모하러 나가서 “걸을 때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에세이 <아무튼 데모> 중)”는 작가를 10일 서면으로 만났다.

원래도 데모꾼인 그는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더 바빴다. 탄핵 시위에 나가고 그 사이 해외 문학제와 시상식 초청 일정도 여럿 소화했다. 광장에 있을 때도 소설가로 해외 독자와 만날 때도 그는 동지들을 떠올렸다.

“내란사태 직후부터 나는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의 불탄 옥상에서 고공농성중이던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가 가장 걱정됐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은 현재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노동쟁의 현장이다. 노동자 박정혜씨와 소현숙씨가 지난해 1월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476일째인 지난 4월 27일 소씨가 건강 악화로 먼저 땅을 밟았고 이제 박정혜씨 혼자 남았다. 농성은 500일을 넘겼다.

정보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지난 4월 4일에도 두 사람을 보러 농성 현장에 갔다. 그곳에서 동지들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지켜봤다. 당일 경향신문에 특별 기고를 썼는데, 그 지면에도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지금도 걱정은 계속된다.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은 명동 세종호텔 앞 좁은 철제 구조물 위에서 100일을 지내고 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은 한화그룹 본사 앞 30미터 철탑 꼭대기에서 여름을 맞이한다.”

그는 현장의 데모꾼이라고 자신을 정의하지만, 글을 쓰는 일로도 사회에 ‘시위’하는지도 모른다. 2025년 필립 K.딕상 최종후보에 오른 <너의 유토피아>에 실린 단편 ‘그녀를 만나다’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세계를 배경으로 2021년 사망한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시상식에서 이 작품의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다.

신작 <아이들의 집>은 국가에 의한 공동 육아가 보편화되 사회를 배경으로한다. 작품은 아동학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는 “자료 조사를 하며 선감학원과 일제강점기 소년법과 범죄소년 개념, 형제복지원, 문제적인 해외 입양 등이 모두 한국 사회와 정부가 체계적으로 저지른 아동학대라고 생각하게돼 거꾸로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공동체에 대해 상상해 봤다”고 말했다.


모두가 저출생을 말하지만, 공감을 사는 돌봄과 양육 대책은 찾기 어렵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에는 고가의 자녀 교육비를 공개하고 7세 고시를 넘어 4세 고시를 준비하는 콘텐츠가 자랑처럼 난립한다. 소설에서 학대 당해 죽는 아이는 수학 실력을 높이기 위해 뇌에 전기 자극을 받다가 사망한다.

그는 “뇌에 전기자극을 주면 수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연구는 실제로 2013년에 나온 연구 결과”라며 “SNS의 과학뉴스 소개 페이지에서 그 이야기를 보자마자 저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분명히 전기고문 당해서 아이가 죽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는 아이를 숫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 대학까지 키우는 데 돈이 얼마 든다거나, 육아휴직하면 월급의 몇 퍼센트가 나온다거나, 이런 보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피해자가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한다. 그런 상상은 소설로 쓸 수밖에 없다”며 “불행하고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만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네셔널 최종후보, 2023 전미도서상 최종후보, 2025년 필립 K.딕상 최종후보 등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 명성의 문학상들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 아직 수상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정보라는 ‘불발 전문 작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관심을 받을 만큼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남한테 폐 끼치는 글은 세상에 내놓지 말고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언제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책과 삶] 이 죽음은 억울하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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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정보라 작가 “드디어 파면···평등과 연대와 안전을 대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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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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