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美토니상 6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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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한국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9일 오전(이하 한국 시각, 현지 시각 8일 오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각본상, 음악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6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의 공연모습.(NHN 제공) 2025.6.9/뉴스1 |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 작품상(베스트 뮤지컬)으로 ‘어쩌면 해피엔딩’과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의 이름이 호명되자 관객은 일제히 기립해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제작진과 배우 30여 명은 무대로 올라 감격의 포옹을 나누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외쳤다. 공연예술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 최고 권위의 토니상은, 올해 6관왕에 오른 ‘어쩌면 해피엔딩’의 화려한 대관식으로 마무리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당시 약 300석 규모인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된 국내 토종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해 초연 9년 만에 뉴욕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 뒤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현지에선 서울이 배경인 공상과학(SF) 뮤지컬이 “인간의 외로움과 유대관계의 힘이란 보편적 소재를 아름다운 음악에 담아내”(미 뉴욕타임스·NYT)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적인 기발함(quirky)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인간애를 녹여낸 수작”이라고 평했다.
● ‘인간보다 인간다운’ 로봇의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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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후반 서울. 무대엔 인간에게 버려진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등장한다. 낡은 아파트에 남겨진 채 반복된 일상을 보내던 그들은, 어느 날 배터리가 방전돼 멈춰버린 클레어를 올리버가 구하며 가까워진다. 이후 올리버는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던 주인 제임스를 찾아 클레어와 제주도로 떠난다. 기나긴 여정 속에서 두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리움과 사랑, 우정의 감정을 마주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에선 2016년 초연부터 97회 공연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고무적인 반응을 이끌었던 작품. 하지만 지난해 11월 브로드웨이 개막 전만 해도 해외에선 고전할 것이란 예상이 상당했다.
이날 토니상에서 각본상, 작사·작곡상 등을 공동 수상한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는 브로드웨이에서 검증된 창작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지에서 익숙한 원작도 없었다. 실제로 프리뷰 공연 초반 4주간 주간 매출은 30만 달러(약 4억 원)를 밑돌았다.
하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넷째 주 주간 매출 100만 달러를 돌파하더니, 이젠 표를 구하기 힘든 인기작으로 올라섰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인기는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진정성 있는 휴머니즘을 담아냈기 때문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배우 4명이 주도하는 소규모 작품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선율과 밀도 있는 대본, 짜임새 있는 연기 및 연출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분석이다.
우란문화재단에서 해당 작품의 초기 개발을 담당했던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은 “브로드웨이의 쇼 뮤지컬과는 다르게, 눈물 흘리게 만드는 한국적 정서가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 “한국식 발라드 삭제” 섬세한 현지화
과감한 현지화 전략도 흥행을 견인한 요소로 꼽힌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서 현지 기호에 맞춰 많은 편곡과 재구성 과정을 거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넘버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를 미국 공연에선 빼버린 것이다.
김 본부장은 “두 곡 모두 한국식 발라드 정서가 강해 미국 관객에겐 감정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인상을 줄 수 있단 판단이 들었다”며 “대신 브라스와 재즈풍의 편곡을 강화했다”고 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창작진을 대거 유입해 브로드웨이 감수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각색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세계에서 쌓아 올린 K콘텐츠의 ‘호감도’도 흥행에 힘을 보탰다는 평가도 나온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검증을 거친 덕분에 뮤지컬에서도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단 분석이다.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는 “자연스럽게 한국적 색채를 드러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반려 식물을 한국어로 ‘화분’이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지 관객들이 오히려 반색했다고 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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