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에 핀 태산목 ‘리틀 젬’. 천리포수목원 제공 |
황금비 | 천리포수목원 나무의사
천리포수목원 겨울정원 한편에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루스쿠스속 식물이 모여 있다. 루스쿠스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4월 말부터 넓은 잎 한가운데에 꽃이 핀다는 점이다. 꽃은 손톱 크기보다 작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한번 발견하면 잎 바로 위에 꽃이 피어 있는 독특한 형태 때문에 오래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사실 잎처럼 보이는 조직은 루스쿠스의 줄기다. 줄기의 분열 조직이 양옆으로 넓어지는 형태로 진화했는데, 이 모양이 마치 잎처럼 얇고 넓적해 잎 위에서 바로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흔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들이 많다. ‘목련은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가을에 낙엽을 떨군다.’ 이 문장은 옳은 말일까, 틀린 말일까?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백목련이나 자목련처럼 주변에서 흔히 가로수로 많이 볼 수 있는 목련은 봄에 꽃이 핀 뒤 잎이 나지만, 노란 꽃잎을 자랑하는 황목련은 늦은 봄 꽃과 잎이 같이 핀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면서 여름에 꽃을 피우는 목련도 있다. 바로 6월부터 가지 끝에서 흰 꽃을 피워내는 태산목이다.
천리포수목원에 핀 태산목 ‘리틀 젬’의 수형. 천리포수목원 제공 |
목련과 목련속에 속한 태산목은 여름내 피워내는 흰 꽃과 도톰한 잎이 인상적인 상록활엽수다. 잎 뒤에는 갈색의 털이 빽빽하게 나 있어 가죽질의 매끈한 잎 윗면과 정반대의 질감을 선보인다. 별다른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도 우아한 수형으로 자라나 정원수로도 인기가 높은 수종인데, 상록수인 만큼 월동이 가능한 남부 지역과 일부 해안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에 핀 태산목 ‘리틀 젬’. 천리포수목원 제공 |
태산목의 진가는 한여름에 드러난다. 6월부터 사람 얼굴만 한 흰 꽃을 가지 끝에서 쉼 없이 피워내는데, ‘사람 얼굴만 한’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품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꽃의 지름이 최대 30㎝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덕분이다. 한여름 수목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항공 사진에서조차 활짝 핀 태산목의 꽃송이를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다.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도 태산목의 장점 중 하나인데, 천리포수목원에서는 11월까지 꽃이 피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태산목 위로 첫눈이 내리는 생경한 풍경도 볼 수 있다.
여름의 천리포수목원 항공 사진. 하단 중앙에 태산목 ‘리틀 젬’, 하단 오른쪽 끝 태산목 ‘빅토리아’에 흰 꽃이 핀 모습이 보인다. 천리포수목원 제공 |
태산목은 자생지인 미국에서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나무라는 의미를 갖는다. 1828년 미국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당선 직후 죽은 아내를 기리며 백악관 정원에 심은 나무가 바로 태산목이다.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이 태산목에서 자란 가지를 묘목으로 키워 선물하는 전통이 생겼는데, 우리 나라에도 선물 받은 태산목이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에서 자라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방한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태산목의 꽃을 두고 ‘봄마다 새로 피어나는 부활을 의미한다’며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 담아 선물한 개체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각각 1974년, 1983년에 심은 태산목 ‘빅토리아’, 태산목 ‘리틀 젬’이 해마다 아름다운 흰 꽃을 피운다. 인위적인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덕분에 지면을 향해 낮게 뻗어 자란 가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늘을 좋아하는 양치식물과 화초는 매년 태산목이 드리우는 서늘한 그늘 아래 여름 한철을 난다.
천리포수목원에 핀 태산목 ‘빅토리아’. 천리포수목원 제공 |
흔히 자연물에서 기대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자연물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곤 한다. 대규모 꽃 축제를 가면 색색깔의 튤립 수만송이를 열에 맞춰 심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내거나, 수천개의 꽃 화분을 위치에 맞게 배치해 알록달록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형 캐릭터 조형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긴 하지만 인위적인 모습에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감상이 떠오르는 건 바로 자연물에서 기대하는 아름다움에는 어긋나있기 때문일 터다. 뜨거운 태양 아래 깨끗하게 피워낸 태산목 꽃 한송이에는 자연이 선사하는 크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모습 역시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한여름에도 큰 꽃송이를 끊임없이 피워내는 태산목의 모습이 아직도 신기한 걸 보면,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의 ‘중위도’ 지역에서 살아온 나의 경험과 시야가 매우 적고 좁다는 것을 느낀다. 손톱만 한 루스쿠스 꽃을 지나치지 않고 감상하는 일, 남부 지역을 여행하며 상록수인 후박나무 가로수 아래를 즐겁게 걷는 일,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을 넘다 차창 너머로 하얀 수피를 뽐내는 자작나무를 오래 눈에 담는 일. 모두 자연에 관심을 가지며 발견한 기쁨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