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보험 아니라 민간 중심…같은 질병에도 진료방법 '천차만별'
진료 데이터 부족·품종별 건강상태 편차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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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동물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이 다양한 이해관계 문제로 인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새 정부 공약 중 하나인 동물진료비 표준수가제 도입과 관련해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공공보험이 아니라 민간보험이라 수가 산정을 주도할 기관이나 단체가 없는데다, 진료 데이터 부족, 동물 품종별 진료 방법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표준 진료비를 산출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수의업계, 보험업계의 정보 공유와 더불어 반려동물등록제 개선, 진료항목 표준화와 데이터 축적 및 청구전산화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반려동물 양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 반려동물 등록률 제고와 인프라 개선을 통한 반려동물보험 활성화와 더불어 동물 진료와 관련한 '표준수가제'를 도입해 진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해당 내용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다.
표준수가제는 동일한 진료 행위에 대해 일정한 기준 가격(수가)을 정하고, 이를 모든 병원이 적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에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반려동물보험은 병원마다 진료 방식과 기준이 다르고, 가격이 자율적으로 설정돼 같은 치료라도 병원마다 가격이 2~3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표준수가제가 도입될 경우 사람의 건강보험처럼 동일한 진료에 대해 진단코드와 항목을 설정하고, 합리적 가격을 부여해 수가를 산정해 표준화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되면 진료비를 예측할 수 있어 과잉진료와 과다청구를 막을 수 있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보험료를 산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확보돼 반려동물보험 활성화도 추진될 수 있다.
문제는 동물병원의 경우 민간이 주체이기에 표준수가제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데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체계로 보험을 이용하지만, 동물병원의 경우 병원마다 자율적으로 진료 항목과 가격을 정하게 된다.
손보사 관계자는 "사람 진료비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의 표준수가가 정해진 항목들을 직접 산정하고 관리하지만 동물의 경우 그런 주체가 없다"면서 "국가가 나서서 관련 기관을 설치한다면 사실상 민간보험이 공공보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의 경우 소득이 있다면 사실상 건강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하는데, 만일 반려동물보험이 공공보험이 된다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까지도 보험료를 받게 될 수도 있어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면서 "표준수가는 일정 수준의 공공성·사회보험 연계성이 있어야 가능한데, 동물 진료는 아직 그 체계가 미비하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경우 반발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수가를 산정한다해도, 진료 기준이 제각각이고 품종별로 차이도 커 진료비 산정 자체의 어려움도 크다. 개의 경우로 예를들면, 시츄와 골든 리트리버 등 크기와 품종에 따라 각각 투입되는 약물의 양이나 의료 장비가 다르다.
사람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 코드와 데이터가 많아 분석이 쉬운 반면, 반려동물 진료는 공식 진료 코드 체계가 없거나, 동물병원마다 다른 명칭·기록 방식을 쓰게 된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평균 비용을 산정하는 것도 어렵다.
수의사들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들은 표준수가제 도입이 오히려 동물의료의 하향평준화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이돈 한국동물병원협회 회장은 지난달 27일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사람에 비해 동물 진료비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저도 20년 넘게 들었지만, 어떤 다른 나라보다 낮으면 되는 건지, 동일한 항목의 사람 수가보다 낮으면 되는 건지도 불분명하다"면서 "동물에게 보다 나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장비든 인력이든 계속 투자해 최고수준의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는데, (표준수가제로) 제약이 온다면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표준수가제 도입 이전에 △반려동물등록제 개선 △진료항목 표준화와 데이터 축적 △청구전산화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국내 반려견은 약 499만2000마리, 반려묘는 약 277만마리로 추정되지만 반려동물등록은 반려견이 324만4234마리로 약 65%, 반려묘는 4만1982마리로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반려동물 등록 비중이 낮은 것은 법적으로는 반려견 등록이 의무이지만, 이를 단속하거나 제재하는 시스템이 미약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 자율 등록이기에 등록률이 현저히 낮다. 내장형 마이크로칩의 경우 반려동물의 고통 우려로 인해 등록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손보사 관계자는 "반려동물 등록이 우선돼야 그 동물의 진료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저장해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해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진료비와 수가를 산정해 나갈 수 있다"면서 "반려동물등록제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미등록시 페널티를 강화해 등록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려동물등록을 통한 데이터 확보한 이후 진료항목 표준화와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보험회사와 동물병원 간의 데이터 공유도 필요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빈도가 잦은 진료항목의 경우 현재도 표준화가 가능하기에, 보험업계가 진료항목과 청구서류 양식 등을 정비해 동물병원과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동물병원은 진료기록 정비·관리 편의성이 높아지고 보험회사와 소비자는 과잉진료를 방지할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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