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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 경제원리…베풀 때 더 풍요롭다

매일경제 박윤예 기자(yespy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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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 경제원리…베풀 때 더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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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인 저자는 아낌없이 베풀면서 함께 번영하는 자연의 섭리를 소개한다. 사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식물학자인 저자는 아낌없이 베풀면서 함께 번영하는 자연의 섭리를 소개한다. 사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현대 경제 이론의 기본 전제가 된 애덤 스미스의 '합리적 경제인' 개념은 항상 옳을까. 합리적 경제인은 순전히 자기 이익을 추구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스럽고 고립된 개인으로 묘사된다. 현행 경제 체제는 이 가상의 캐리커처를 뒷받침하도록 설계돼 있기에 이런 인간상을 배출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합리적 경제인의 탐욕적인 행동보다 그렇지 않은 행동을 훨씬 많이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경제적 정체성을 길러낼 다른 체제를 상상해보자.

식물생태학자이자 뉴욕주립대 환경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비스베리에서 그 답을 찾았다. 풍성한 베리는 땅이 베푸는 순수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베리를 얻기 위해 일하지도, 돈을 지불하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값어치를 아무리 따져봐도 우리가 베리를 얻을 자격이 있다는 계산이 안 나온다. 그런데도 베리는 여기에 있다. 해와 공기와 새와 비와 함께. 천연자원이라고 부를 수 있고 생태계 서비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선물이다. 우리는 입안을 가득 채운 채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저자가 찾은 답은 '선물 경제'로 명명된다. 선물을 주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팔지 않는다. 젖은 생명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순수한 선물이다. 이 경제의 화폐는 감사의 흐름, 사랑의 흐름이며 말 그대로 생명을 떠받친다. 자연경제에서 흐름의 원천이 태양이라면 인간 선물 경제에서 '태양'은 사랑이다.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그림, 다산초당 펴냄,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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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다. 이 관계는 감사로, 상호의존으로, 계속되는 호혜성의 순환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작고 긴밀한 공동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선물 경제를 따르는 여러 토착 부족은 '감사의 문화'를 물려받는다. 이런 삶의 방식은 제의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땅이 베푼 선물을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받아들인다. 감사를 표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욕보이는 행위이며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 비버를 너무 많이 잡아 욕보이면 그들은 떠날 것이고, 옥수수를 허비하면 사람은 굶주릴 것이다. 받은 선물을 헤아리면 풍요의 감각이 생겨난다.

선물 경제에서 부는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 만큼 가진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풍요를 다루는 방법은 내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푸느냐다. 선물 경제는 상호 안녕을 증진하는 공동체의 유대를 길러준다.

현행 경제 체제는 이 같은 선물마저 모두 상품화한다. 이 체제는 풍요 대신 결핍을 가져오고, 공유가 아니라 축적을 부추긴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경제적 가치 측정법은 시장에서의 금전적 가치, 즉 사고팔 수 있는 것의 가치만 셈한다.


다만 선물 경제는 신뢰를 저버리는 무임승차자가 있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물 경제는 너무 많이 가져가는 사람 때문에, 나눔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 때문에 종종 탈선했다. 우리는 선물 경제에서 절제와 존중, 존경 그리고 호혜를 바탕으로 받드는 거둠을 실천할 것을 요청받는다.

선물 경제를 개별적 관계에서 나아가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선물 경제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공동체 규모에서 구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은 선물 경제가 더 큰 규모에서 시장경제와 공존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공도서관은 선물 경제의 본보기로 책뿐 아니라 음악, 강연 등을 자유롭게 나눈다.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풍요다. 필요한 것은 도서관 회원증뿐이다. 이것은 공유재를 존중하고 귀하게 대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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