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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통전부가 전화받으면 시작"…李정부 대북정책 프로세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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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통전부가 전화받으면 시작"…李정부 대북정책 프로세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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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친미파∙민족주의자 외교안보 투톱 발탁
실용외교, 고도의 외교 감각 필요
‘뚜두두---’

진보 정권 출범으로 남북 대화가 추진될 때 가동되는 첫 수단이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의 ‘핫라인’이라고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문재인정부로 교체돼 남북 대화를 시도할 때도 이 전화로 소통의 물꼬가 트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 이재명 대통령. 조선중앙TV캡처·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 이재명 대통령. 조선중앙TV캡처·연합뉴스


“박근혜정부 때는 연락이 끊겼는데 정권 교체 후 어느 날 북한 통전부가 전화를 받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죠. ‘기류가 변했구나.’ 그렇게 통화가 되면 제3국이나 판문점에서 1차적으로 연락관들이 접선을 하게 됩니다.”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5일 이렇게 전했다.

이렇게 물밑 접촉을 통해 ‘왜 전화를 받았을까. 원하는 게 뭘까’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뒤 대북 정책을 추진해 최종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까지 나간 게 문재인정부 시절 접근 과정이었다. 우리 정부는 정권 성향과 관계 없이 이 핫라인을 통해 매일 접촉을 시도한다고 한다. 북한이 아예 전선(電線)을 끊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차원이다.

이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대화가 시작되는 셈인데, 이재명정부의 남북 대화 추진은 7년 전에 비해 매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 및 개교 1주년 행사 무대 모습.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 및 개교 1주년 행사 무대 모습. 연합뉴스


◆이미 강 건너간 北…민족 개념도 폐기

신임 국정원장에 내정된 이종석 후보자는 외교안보 파트에서 성향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때 ‘민족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 후보자는 노무현정부 시절 남북 대화를 주도했던 인물로, 이재명 대통령의 ‘남북 대화를 통한 평화 관리’ 구상을 추진할 적임자로 낙점됐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노무현∙문재인정부 때와 달리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하며 ‘민족’ 개념을 폐기한 상태다. 이제는 ‘남조선’이나 ‘남측’ 대신 대한민국으로 지칭하며 별개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이 후보자의 북측 인적 네트워크도 사실상 전멸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자의 북측 라인은 서훈 전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2013년 숙청된 북한 장성택 계열이었던 걸로 전해졌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스1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뉴스1


문재인정부 때는 이미 북한 내부에서 정리된 장성택 라인 대신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이 소통 주축이 됐지만, 그때 라인도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숙청됐다. 이후 한국에 보수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소통이 끊겼다.

지금은 민족 개념을 폐기한 북한과 척박한 환경에서 새로 소통을 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자칫 경제협력과 같은 ‘평화를 사는 방식’, 보수 진영의 표현으로는 ‘퍼주기’식 접근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일각의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안전치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안전치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李 정부 길들이기 나선 트럼프

대북 정책보다 시급한 건 한∙미 관계 설정이다.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전화통화는 취임 당일에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 첫날 당선인 신분으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오전까지 별다른 축하성명도 보내지 않았다.

한∙미 동맹이 외교안보의 주축인 상황에서 미국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대북 정책도 추진력을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이 향후 발표할 ‘통일 구상’, ‘대북 정책 구상’도 미국과의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 참석한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 참석한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친미파’, ‘동맹파’인 더불어민주당 위성락 의원을 국가안보실장으로 발탁하며 한∙미 동맹 중시 기조를 분명히 했지만,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조하는 트럼프 정부는 첫 통화 일정에서부터 잡음을 일으키며 기선 제압에 나선 모습이다.

지난 정부는 취임 3개월 뒤인 2022년 8월15일 광복절에 통일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나선 이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또는 내년 3∙1절 전까지 대북 구상을 발표하려면 이 대통령이 내건 ‘실용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내보이고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는 한쪽 편에 서는 것보다 어려운 고도의 외교 감각이 요구된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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