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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희대의 불편한 ‘동거’… 대법관 늘려 힘 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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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희대의 불편한 ‘동거’… 대법관 늘려 힘 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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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장 후보자 임광현 의원…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오영준
4년간 매년 4명씩 늘리는 법안
대법관 다양성 제고 효과도
제도 선정비 없인 부작용 우려
‘조희대 대법’ 겨냥했단 지적도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증원 입법에 속도를 내는 데 대해 법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고심 심리를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는 공감을 얻었지만, 단기간에 대법관을 대폭 증원할 경우 전원합의체 ‘무력화’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것이다.

5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4일 법안심사 1소위를 열고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지금보다 16명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소위는 1년에 4명씩 총 4년간 16명을 늘리되 법안이 공표된 뒤 1년간 시행을 유예하는 내용의 부칙을 담았다.

◆심리충실·지연해소 기대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왼쪽) 등과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왼쪽) 등과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안의 취지는 사건을 처리할 대법관을 늘려 “개별 사건에 보다 충분한 시간과 역량을 투입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법안 제안이유를 보면 대법관 1인의 연간 처리 사건 수가 5000건에 달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고 이로 인해 “심층적 심리와 숙의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상당수 사건이 ‘심리불속행 기각’(본안 심리 없는 상고 기각)으로 종결되는 구조 속에서 상고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대법관을 증원하면 “사회적 다양성이 반영된 대법원 구성을 가능케 해 대법원의 심리 충실성과 사회적 신뢰를 제고하며,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과 법치주의 실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법관 수는 2007년 법원조직법 개정 이후 18년가량 14명(종전 13명)에 머물러 있다. 이후에도 대법원 접수 사건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상고법원 설치, 대법관 증원 등을 통한 재판 지연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선 대체적으로 대법관 증원 자체에 대해선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지난달 대법관 증원에 대해 “상고심 제도의 병목 현상을 완화하고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라며 “구성의 다양성까지 확대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평가했다.

◆“수만 늘리면 오히려 피해” 주장도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전치안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전치안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대법관이 증원되는 ‘속도’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를 통과한 개정안 대로면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 현재의 2배가 넘는 30명이 된다. 늘어난 대법관들이 어떻게 사건을 처리할지에 대한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그 수만 늘리면 오히려 상고심이 ‘마비’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해 재판 확정은 더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천 처장은 “결국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 버리기 때문에 전합의 충실한 심리를 통한 권리 구제 기능 또한 마비될 수밖에 없다”며 “치밀한 조사 없이 일률적으로 대법관 수만 증원하면 국민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이날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뭔지,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뭔지 국회에 설명을 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李 불리한 판결에 복수?… 의심의 눈초리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학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 대로) 준비없이 단칼에 대법관을 증원하는 것은 여러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우선 현실적으로 대법관 30명이 모두 전원합의체에 참여할 수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법시스템을 가진 독일처럼 먼저 전문법원체제를 갖춰 분야를 나눠 심리해야 한다고 봤다. 독일의 최종심은 일반 민·형사 재판을 하는 연방일반대법원과 행정·재정·노동·사회 분야 전문대법원이 따로 있다.

짧은 기간에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를 충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 교수는 “대법관 한두명을 충원할 때도 누가 적임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4년에 걸쳐) 16명을 임명한다면 속된 말로 ‘함량 미달’인 사람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의 힘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여전하다. 증원하는 대법관을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명 및 임명한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정년(70세)이 되는 2027년 6월까지로 약 2년이 남았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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