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9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만났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
이재명 대통령 취임 뒤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 가운데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사의만 수용된 가운데,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최근 박성재 전 장관과 만났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 위원장 글은 법무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노골적으로 담았는데, 법무부가 국가배상소송의 정부 쪽 대표자로 과거사 피해자와 맞붙어 온 상황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행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박선영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5일 보면, 이날 박 위원장은 정부 과천청사에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만나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업무를 협의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최근에 있었던 납북귀환 어부의 재심 사건이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손해보상판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무부가 매뉴얼을 만들어 적극 협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보상을 요구하는) 복잡한 과정을 돕기 위해 법무부는 2019년에 매뉴얼을 만들었고, 2023년엔 그 매뉴얼을 개정해 더 정교한 제도적 절차를 마련했다”고 썼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보상 요구 등 권리구제 활동을 할 때 법무부가 적극 도와줘 고맙다”는 취지였다. 법무부가 영문명(Ministry of Justice)처럼 “정의부답다”고 적기도 했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인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갈무리 |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과거사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소송에서도 법률상 국가 쪽 대표자로 나선다. 송무 업무는 법무부와 검찰이 주관한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는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내린 사건의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배보상 소송을 진행할 때 항소와 상고를 이어가 피해자의 고통을 지속한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적잖았다. 진실화해위라는 국가기관이 국가폭력 사건의 피해를 확인하고 국가의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면, 또 다른 국가기관인 법무부는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원활한 보상을 막는 구조인 셈이다. 과거사법(진실화해위 기본법)을 개정해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뒤 소송 없이 배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납북귀환 어부와 간첩조작 사건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재심과 국가배상소송을 대리해온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 대표)는 한겨레에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의 취지를 살려 직권재심을 청구하는 납북귀환어부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간첩조작사건에서 검찰은 진실규명 결정을 부정하며 재심개시를 방해해 왔다”면서 “법무부가 지휘하는 국가배상소송에서도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만으로는 입증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물론 더 나아가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소멸시효 주장과 함께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소를 남발했다”고 말했다.
실제 배보상 소송을 진행하며 국가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호소도 끊이지 않았다. 1981년 9월 ‘이윤상 군 유괴 및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 고문을 당하다 오른쪽 눈을 잃은 이상출(69)씨가 단적인 사례다. 이씨는 지난해 2월 진실화해위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뒤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중이지만 법무부가 지정한 소송수행자는 “손해를 배상할 만한 위법행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 달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상출씨의 아내는 첫 재판 날 소송수행자의 발언과 태도를 보며 “45년 전 일이라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속수무책 상황에서 테러를 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선영 위원장은 또 페이스북에서 법무부가 매뉴얼을 만들어 과거사 사건에 적극 협조해왔다고 적었으나, 실제 법무부의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검찰청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6월 “고문 등으로 증거가 조작되었음이 명백하거나 공범이 무죄 확정되었고 달리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상소 부제기” 등의 내용을 담은 ‘과거사 재심사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검찰청에 배포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인권침해 사건 조사와 진실규명을 관할했던 이상훈 전 상임위원은 “법무부는 진실화해위 결정을 무시하고 국가의 책임이 없다면서 항소·상고를 거듭하는 등 소송을 질질 끌었는데 어떤 매뉴얼로 적극 협조해서 배상판결이 가능했다는 것인지 황당하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한 직원도 “법무부 장관을 만나 항소를 하지 말라는 말부터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재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이튿날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과 ‘대책 회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선영 위원장은 내란 사태 직후 임명된 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고 외려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과거 국가폭력 피해를 조사하는 기관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