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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차별 구조 바꾸는 ‘국가 재설계 전략’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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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차별 구조 바꾸는 ‘국가 재설계 전략’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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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15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충북대학교 오창캠퍼스에서 열린 ‘지역 거점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간담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15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충북대학교 오창캠퍼스에서 열린 ‘지역 거점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간담회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10개 만들기’ 어떻게 볼 것인가



장승진 |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은 단순한 교육 정책이 아니다. 이 구상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기회의 진입로를 전국 단위로 재구성하겠다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이자, 학벌 중심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교육 개혁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지역 공동화, 인구 감소,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복합 위기를 고려할 때, 이 공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전략이다.



한국의 대학 체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집중과 편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의 80% 가량이 서울에 있어 물리적 교육 여건, 취업 여건, 인맥 여건, 사회문화적 여건을 전유함으로써 병목을 일으키고 있다. ‘인 서울’이 합리적 선택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29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대학 서열화로 인한 줄 세우기 평가와 문제풀이식 교육, 그 연장선에 있는 공교육 붕괴,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할 만큼 극심한 경쟁 고통, 부모의 양육 부담과 낮은 출산율, 지역 인재 유출로 인한 지역사회 소멸 위기 등 국가의 실존과 관계되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파생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다르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립대(UC) 체제, 미시간대, 텍사스 오스틴, 위스콘신 매디슨 등 주마다 공공성과 지역발전을 동시에 담보하는 연구중심 대학을 운영함으로써 병목을 해소하고 있다. 독일은 2006년부터 우수대학육성정책을 통해 전국 주요 대학에 균형 있게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지역 산업과 연계된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해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일본도 도쿄대 외에 교토대, 오사카대, 도호쿠대, 홋카이도대 등 지역 기반 거점 국립대학들을 갖춤으로써 대학이 각 지역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은 수도권 대학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물리적 자원 아래 서울과의 격차를 극복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줄곧 구조조정 대상으로 여겨졌다. 교육의 기회가 ‘지역’이라는 운명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은 민주 사회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차별의 구조라 할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히 간판만 ‘서울대’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수진 확보, 첨단 연구소 유치, 산학 연계 특화 학과 설계, 지역 산업과의 클러스터 형성 등 대학 생태계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다. 가령 경상대는 우주항공산업과 관련하여 특화하고, 부산대는 조선산업과 해양산업과 연계하여 분과 학문을 발전시키고, 경북대는 국가의 혁신도시 종합발전계획 등과 연계하여 미래 교통산업을, 전남대는 미래 에너지산업을 특정 연구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는 방안 등을 모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정책의 가치는 이미 여야가 공감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윤석열 전 정부 또한 2022년 국정과제로 ‘지방대학 시대’를 내세웠다. 여야가 모두 주목했던 수도권 쏠림 해소와 교육 정상화 실현 방안을 이제 한국 사회가 분명한 실천으로 옮길 때가 된 것이다.



법학자 조지프 피시킨은 ‘기회의 경로가 좁을수록, 경쟁은 더욱 파괴적이며 불공정하다’고 지적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은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정책을 바꾸면 결과도 바뀐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바로 이 불평등의 정책 구조를 전환하려는 시도이며, 기회 구조를 서울 중심에서 전국으로 확장하려는 초석이자, 더 나아가 고등교육의 생존 전략이다. 지역을 살리고, 청년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재설계하겠다는,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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