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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의 나라’ 되지 않으려면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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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의 나라’ 되지 않으려면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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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4월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 추가경정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4월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 추가경정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현웅 | 정책금융팀장



지난 선거 운동 기간 ‘기획재정부의 나라’라는 일화가 꽤나 회자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가 대국민 재난 지원 대책의 범위와 규모 등을 두고 기재부 관료들과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일갈했다는 이야기다. 선거 기간 내내 유력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을 두고 기재부의 재정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을 콕 찍어 공약하면서, 새 정부 출범 직후 기재부에 집중된 예산과 세제, 정책 조정, 금융 등 권한을 분리하는 대대적인 개혁 작업이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선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쪼개 대통령실 산하 등으로 이전하고, 금융과 경제 정책 기능을 중심으로 부처 기능을 재편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언급되고 있다. 적기에 원활하게 재정 정책을 펼쳐 경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예산에 대한 ‘그립’을 세게 쥐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 방안이 차질 없이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내수 위축과 수출 둔화로 당장 경기 대응이 급선무인 거시 경제 환경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1호 지시로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고 내수를 뒷받침하려 해도 수십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실을 대규모 재정 사업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어떤 사업을 어느 만큼 진행해왔는지 낱낱이 알고 있는 기재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통상 2~3주 소요되는 추경안 편성 직후엔 곧바로 2026 회계연도 본예산 편성 작업이 예정돼 있다. 새 정부의 국정 기조를 구체화할 첫 예산이니만큼 그 어느 정책 현안보다 공들여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새 정부 입장에선 재정당국에 많은 것을 기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새 정부는 전임 윤석열 정부가 남긴 청구서 위에 경제정책 밑그림을 입안해야 하는 처지다. 87조2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수결손과 이로 인해 망가진 조세기반이라는 청구서다. 집권 초기 어쩔 수 없이 기재부 손을 빌리다, 어느덧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다.



이에 새 정부 집권 직후 세수 재추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안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로부터 넘겨받게 된 나라 살림의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재정건전성 시비의 귀책 사유부터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세수 재추계 결과는 새 정부 첫 과제인 추경의 세입 경정에 담으면 된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와 경기 둔화로 향후 한국의 거시 안정성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라 켜질 텐데, 이는 확장적 재정 운용을 경제 정책의 기본 틀로 삼으려는 새 정부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책 목표의 실행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노력도 결부돼야 한다. 재정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나라 살림이 거덜 나지 않도록 보수적인 재정 운용을 훈련한 엘리트들이다. 이들의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므로, 그 우려가 기우에 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진행할 세수 기반 확충 로드맵과 잠재 성장률 제고 비전을 명확히 해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계층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구조개혁을 달성하고, 인기 없는 증세 방안을 끝내 관철해내는 정치적 리더십에 달린 문제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내란 극복을 위해 추진될 개헌 과정에 예산 편성에 대한 국회의 민주적 통제와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살펴야 할 것이다. 국회 소위에서의 계수 조정 과정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예산정책처의 기능을 강화하며, 헌법에 규정된 정부의 예산증액 동의권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행정부 안에서의 위계질서와 별개로, 장막 뒤에서 ‘쪽지 예산’을 나누는 수준인 국회의 예산안 통제로 재정 관료들을 견제한다는 것은 미망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이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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