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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각지대에 놓인 1형당뇨인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박근용씨(오른쪽)와 9살 율아가 세종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모습. 사진 박근용씨 제공 |
2025년 5월23일 1형당뇨를 겪는 9살 율아와 아버지 박근용(47)씨는 세종시의회에서 서울 국회의사당까지 170㎞를 걷는 행진을 시작했다. 2024년 2월 세종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제1518호 참조)한 뒤 1년 3개월 만이다. 이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1형당뇨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1형당뇨는 어느 순간 몸에서 인슐린 분비가 아예 되지 않는 질환이다. 인슐린이 일부 분비되는 2형당뇨(당뇨 발병인의 대부분이 2형당뇨)와 차이가 있다. 외부 인슐린 주입과 실시간 혈당 체크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이를 돕는 기기(혈당측정기, 인슐린주입기 등) 이용이 필수적이다. 혈당 관리가 안 되면 고혈당성 혼수, 저혈당 쇼크 등을 겪을 수 있다.
1형당뇨는 장애로 인정되지 않고 중증난치질환에도 해당되지 않아 의료비 부담이 크다. 2024년 1월 충남 태안에서 1형당뇨 진단을 받은 8살 아이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높은 의료비 문제가 공론화하기도 했다. 근용씨는 행진을 시작하며 “(태안 사건 이후에도) 1형당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고, 정책적 지원은 미흡하며, 아이들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며 “1형당뇨인의 자살률이 암환자의 1.8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근용씨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장정을 통해 대선 후보에게 이런 점을 알리려 한다. 5월28일, 한겨레21은 행진 중인 근용씨와 전화로 일문일답을 나눴다. 통화 당시 그는 경기 수원시 인근을 지나는 중이었다.
—율아는 어떤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나.
“지난 대장정 이후 1형당뇨를 겪는 친구들이 체육활동과 체험학습에 도전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들었다. 율아는 이 친구들을 포함해 꼭 1형당뇨가 아닌 다른 힘든 친구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어 다시 걷겠다고 했다.”
—걷는 동안 어땠나.
“지난번엔 겨울이라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 덥다. 상상을 초월한다.(당일 낮 최고기온 28도) 이번에는 대선 전에 끝내려는 일정 때문에 매일 24㎞ 이상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많이 힘들긴 했지만 벌써 반 이상 왔다.”
—대선 후보들을 만나는 것이 목표였는데.
“5월25일 충남 천안역을 지나는 일정이었는데, 마침 아산에서 이재명 후보(더불어민주당) 유세가 있었다. 많은 1형당뇨 아이 부모, 당사자의 제안으로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2시간을 기다려, 끝나고 이동하는 후보 차량과 마주쳤다. 이 후보에게 내 명함과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자료를 전달했다. (행진은) 대통령 후보가 1형당뇨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는데, 나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더 욕심내자면, 많은 분이 1형당뇨를 알게 되었으면 한다.”
—2024년 대장정 이후 정책적 변화가 없었는데.
“사실 정책적으로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1형당뇨는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데, 췌장 장애로 인정해야 한다. 또 현재 1형당뇨가 중증난치질환이 아니어서 의료비 부담이 크다.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돼야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 펌프 등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는 19살 미만 1형당뇨인에게만 인슐린 펌프 등 지원을 확대했는데, 1형당뇨 유병 인구 중 19살 미만은 10%가 채 안 된다. 이런 지원들이 건강보험 급여화가 된다고 해도, 아이들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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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각지대에 놓인 1형당뇨인 현실을 알리기 위해 9살 율아가 아버지 박근용씨와 함께 세종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모습. 사진 박근용씨 제공 |
—정부가 개선에 소극적인 이유는.
“정부는 ‘질병 간 형평성’을 들어 지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 아주 적은 비용으로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1형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정말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의 큰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 정치인들이 고통받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면 좋겠다. 정치라는 게 생명을 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겨레21을 비롯한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언론이 우리처럼 소외된 이들을 위해 많이 노력해준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한 번 더 꼼꼼히 생각해주고 챙겨준다면 감사하겠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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