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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소년공에서 "약자 편" 대통령으로…이재명의 파란만장 인생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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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소년공에서 "약자 편" 대통령으로…이재명의 파란만장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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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인생 스토리' / 그래픽=최헌정

이재명 대통령의 '인생 스토리' / 그래픽=최헌정



"이재명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이재명이 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재명은 변방 출신이고 중소기업 편이고 지방 편이고 약자 편이고 어려운 서민 계층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5월31일 충북 청주 현장 유세)

이른바 '흙수저' 출신의 이재명 대통령이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 서열 1위의 국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소년공,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를 거쳐 대통령이 된 이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대통령은 주민등록상 1964년 12월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청량산 자락의 한 산골마을에서 7남매(5남2녀) 중 다섯째(4남)로 태어났다. 실제 태어난 연도는 1963년쯤인데 출생신고를 늦게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이 대통령은 1976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 성남시 한 빈민촌의 월셋집으로 이사해 아홉 식구와 단칸방 생활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13살의 나이로 '이름 없는' 소년공의 삶을 살았다.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해 동네 형 이름을 빌려야 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다. 14살에 취업한 한 공장에선 함석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베이고 찔렸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선 소가죽 원단을 누르는 프레스 기계에 왼팔이 눌려 평생 '굽은 팔'로 살아야 했다. 페인트 공장 등을 거치며 후각도 나빠졌다.

무엇보다 '소년공 이재명'을 힘들게 한 것은 강제 권투시합이었다. 이 대통령은 아픈 팔을 휘두르며 공장 고참들의 볼거리가 돼야 했다. 이 대통령의 유년기는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 삶'과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는 정치적 소신의 밑거름이 됐다.

이 대통령은 소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스스로 희망을 쫓아 길을 내고 기회를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장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3000등 안에 드는 고득점을 올렸다. 하루 두 시간씩 자며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가기를 반복했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독서실 책상에 뿌려놨던 압정에 박힌 채 잠들었던 숨은 일화도 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 대통령은 1982년 전액 장학금과 매달 2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하며 '대학생 이재명'의 삶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교복을 입지 못했던 한을 풀고자 대체로 사용되지 않았던 대학 교복을 입고 대학 입학식에 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우연히 유인물을 통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접했다. 사진과 비디오를 보고 참상과 마주했다. 권력과 언론에 속았다는 분노가 솟구쳤다. 이 대통령은 이때부터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 대통령은 반드시 사법시험에 합격해 제도권 안에서 가난과 부조리를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2025.6.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2025.6.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이 대통령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판·검사가 아닌 '인권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1987년 7월14일 일기장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나의 지식과 자격을 필요로 한다. 역사가, 민족이, 노동자가 핍박받고, 가난한 민중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아니한가"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서울 도시 정비사업으로 쫓겨온 철거민과 공단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온 이들의 위해 일했다. 1991년 여름엔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피아노를 전공한 대학생 김혜경 여사와 결혼했다.

이 대통령은 1995년 당시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시민운동가 이재명'의 삶을 시작했다.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고발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2003년에는 성남시 종합병원 두 곳이 동시 폐업하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하자 공공의료기관 설립 운동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민 10만 서명' 운동을 주도하며 2004년 3월 성남시의회의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시 의회에서 해당 조례안은 47초 만에 부결되며 좌절감을 느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이때 이 대통령은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 대통령은 2006년 성남시장 선거·2008년 총선(성남 분당갑)에서 낙선한 후 마침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고 당시 약 6500억원의 부채로 고통받던 성남시의 재정을 취임 후 약 3년만에 정상화했다. 청년배당·교복·산후조리 등 3대 무상복지 정책도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성공적인 시정을 발판으로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고 2018년 6월 경기도지사에, 2022년 6월 재·보선 및 2024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22년 8월과 2024년 8월 민주당 당대표로 연속 선출된 데 이어 총 세 차례 도전 끝에 2025년 6월3일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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