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안탈리아의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사람이 까마득히 보이는 아래 무대에서 소리를 질러도 꼭대기 객석까지 메아리가 생생히 울려 퍼진다. 고봉준 기자 |
‘신의 휴양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다. 바로 튀르키예 남부의 항구도시 안탈리아다. 지중해를 품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찬란한 고대 유적을 지닌 미항(美港)이다. 유러피언의 안식처로 통하는 그곳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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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휴양지
칼레이치를 지키는 하드리아누스의 문. 2세기에 지어졌는데도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고봉준 기자 |
안탈리아는 기원전 2세기께 세워진 도시다. 200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건축물을 비롯해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의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로마 제국 유적 옆에 그리스 시대 기둥이, 또 그 건너편에 이슬람 고적지가 자리 잡고 있는 식이다.
안탈리아의 대표 문화유산은 1만5000석 규모의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이다. 2세기에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설계도 과학적이다. 별다른 음향 장치가 없는데도 무대에서 내는 소리가 맨 꼭대기 객석까지 선명히 들린다.
그리스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들던 찰나. 현지 가이드 풀야 바크르가 ‘아리랑’을 열창하기 시작했다. 노랫소리가 객석을 한 바퀴 돌며 메아리치는 무형(無形)의 장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튀르키예 안탈리아 칼레이치의 해변가. 뙤약볕이 빚어낸 지중해의 윤슬이 장관이다. 고봉준 기자 |
안탈리아 역사 지구 칼레이치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레이치는 성벽에 둘러싸인 옛 마을이다. 고택을 호텔로 바꿔 놓은 곳에선 저절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게 된다. 2세기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리기 위해 지은 ‘하드리아누스의 문’이 대표 유적지다. 이 문을 통과하면 빨간색의 트램이 지나다니는 중심가로 이어진다.
해변을 따라 각양각색의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이 줄지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네를 누볐다. 튀르키예식 디저트 로쿰과 함께 농어찜, 새우 스튜 같은 지중해풍 해산물 요리가 명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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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밤바다
시데의 해변가. 수온이 낮지 않아 젊은 휴양객들이 늦은 오후에도 물놀이를 즐긴다. 고봉준 기자 |
칼레이치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지중해에서 가장 노을이 아름답다는 시데가 있다. 바닷가의 아늑한 도시다. 시데는 고대 그리스인의 터전이었다. 지금도 옛 생활 공간인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해 목욕 시설 ‘하맘’, 수로와 분수 터 등이 남아 있다.
수천 년 전 고도를 걷다 보면 바닷가 끄트머리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다다른다. 기둥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위용이 여전히 강렬하다. 가이드 바크르는 해 질 녘의 아폴론 신전을 가리키며 “보랏빛 노을을 품은 모습이 넋을 잃게 한다”며 감탄했다. 외국 손님에게 경복궁을 소개할 때 우리의 표정이 딱 저랬을까.
튀르키예 안탈리아 시데의 아폴론 신전. 고봉준 기자 |
튀르키예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안탈리아에선 높은 첨탑을 올린 모스크를 자주 볼 수 없었고, 히잡을 쓴 여성도 많지 않았다. 라크(튀르키예 전통술)는 물론 맥주와 와인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바크르는 “유럽에서 온 휴양객이 많고, 관광지로 개발된 지역이라 종교적 분위기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탈리아가 튀르키예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자유로운 여행지로 통하는 이유다.
■ 여행정보
튀르키예 안탈리아 벨렉의 골프 리조트 레그넘 카리야. 사진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
안탈리아는 직항편이 없다. 대개 이스탄불을 경유해 들어간다. 인천~이스탄불은 11시간 40분, 이스탄불~안탈리아는 1시간 25분 걸린다. 연평균 기온이 21도로 온화한 편이다. 6~8월 여름은 한낮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치솟는다. 안탈리아는 고급 리조트가 많아 유러피언은 물론이고 한국인 여행자에게도 인기가 높다. 24시간 음식과 주류를 맛보고 골프를 즐기는 5성급 ‘올 인클루시브’ 숙소가 적지 않다.
안탈리아(튀르키예)=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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