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통령의 첫 100일’은 리더십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시기라고 말한다. 첫 100일의 중요성을 처음 각인시킨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3월4일 취임했다. 당시 미국은 은행들이 연쇄 파산하고 실업률이 25%에 이르는 등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지금 행동, 그리고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우선 임무는 사람들을 일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나의 헌법적 의무하에서 도탄에 빠진 나라가 요구하는 조처들을 권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전례 없는 속도로 위기를 타개할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다. 취임 이틀 뒤 예금 인출 사태를 막고자 모든 은행의 영업정지를 명령했다. 그리고 의회에 특별회기 소집을 요청해 긴급은행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엔 예금자 보호를 위한 연방예금보험공사 설립 추진안이 담겼다. 은행 영업 재개를 하루 앞둔 전야(3월12일)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자 첫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일주일간 어떤 조처를 내렸고, 왜 그런 조처를 내렸는지, 그리고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소상히 설명했다. 그의 국민과의 소통 방식인 ‘노변담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의회는 약 100일에 걸쳐 실업과 빈곤 긴급구제, 일자리 창출, 산업 부흥을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 등 대공황 극복을 위한 15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뉴딜 정책의 시작이었다.
첫 100일은 애초 루스벨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 표현은 그해 7월24일 ‘첫 100일에 관하여’(On the First Hundred Days)라는 제목의 노변담화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거기서 “뉴딜의 출발에 공헌한 100일”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실 의회 특별회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후 뉴딜 정책이 대성공을 거두며 ‘대통령의 첫 100일’로 알려지게 됐다. 그는 초기의 신속하고 대담한 추진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통합을 이뤄내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남게 됐으며, 역대 미국 대통령 대부분이 이를 벤치마킹해 ‘집권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실행한 ‘신경제 100일 계획’이 대표적이다. 물론 모든 대통령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거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과욕을 부리거나 방향이 잘못됐을 경우엔 국정에 독이 될 수도 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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