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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해야 하는 말, 불평등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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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해야 하는 말, 불평등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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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 공식 공보물. 박승화 선임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 공식 공보물. 박승화 선임기자


6·3 대통령 선거의 열쇳말은 ‘성장’이다. 거대 양당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과 ‘자유 주도 성장,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장의 도구는 ‘인공지능(AI) 산업 진흥’이다. 이를 위해 이 후보와 김 후보는 나란히 ‘100조원 규모 AI 투자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우리가 단 한 번도 성장의 결실을 고루 나눠 가진 적이 없는 나라라는 점이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상대적 빈곤율은 언제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소득 격차는 코로나19 이후 잠시 나아졌다가 최근 다시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AI 산업의 성장은 곧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선 해고자가 쏟아지고, 기업의 41%는 인공지능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고용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이런 점을 고려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열쇳말은 성장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와 노동권 보호가 돼야 한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3차 티브이(TV)토론에서 복원을 주장한 ‘노동자 이익균점권’이 하나의 예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은 국가가 조세를 거둬서 복지제도를 통해 사후적으로 재분배하는 게 아니라, 기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정 부분을 노동자가 즉시 나눠 가질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1948년 제헌헌법에 기본권으로 담겼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삭제됐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권 후보의 지지율은 여론조사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하다. 그것은 이익균점권이 헌법에 담겼지만 실제 법률로 구현되지 못한 데서 보듯, 불평등을 해소하는 제도가 실행된 역사적·사회적 경험이 부재한 탓이다. 유권자로선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말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아울러 줄기차게 성장만 외쳐온 사회의 결과로 승자독식을 우대하는 문화와 각자도생을 위한 능력주의가 지배담론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이익을 나눠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말은 ‘왜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 몫을 나눠줘야 하느냐’는 반발을 사게 된다. 이른바 무임승차론이고, 역차별론이며, 불공정론이다.



승자독식과 능력주의 사회에선 혐오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불평등이나 양극화 등으로 인한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불평등 해소 정책으로 해결을 도모하자고 말하기보다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과 같은 소수자가 이 사회에 불공정하게 무임승차하고 있어 당신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며 적대감을 전가하도록 갈라치기를 유도하는 게 바로 혐오 정치다. 이런 정치를 자산으로 최초의 30대 제1야당의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다. 이준석 후보가 TV토론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묘사한 혐오 발언을 하여 거센 역풍에 시달리면서도 사과하지 않고 버티며 ‘압도적 해로움’을 이어가는 건 그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포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은 이번호에서 성장 공약의 그늘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두루 짚어봤다. 이는 이번 대선을 통해 혐오가 아니라 연대의 정치를 말하기 위한 작은 가능성이라도 열어보자는 간곡한 제안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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