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 논개'를 연출한 고능석 극단현장 대표. 송봉근 기자 |
진주 남강에 띄운 수상객석은 사람들 발걸음이 거칠기라도 하면 출렁였다. 공병부대가 수상 작전 때 주로 사용하는 고무 폰툰(pontoon) 4700여개를 엮어 만든 600석 임시 객석이다. 강물을 사이에 두고 진주성 아래 의암(義巖)을 낀 야외무대가 펼쳐졌다. 너비 52m짜리 너럭바위 위에서 왜병과 시민들 간 전투가 전개된 뒤 하얀 소복을 입은 논개의 절규. “이제야 저 푸른 강물이 피눈물로 보이느냐.” 그가 왜장을 안고 뛰어내리자 ‘풍덩’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
공연 땐 진주 남강에 600석 규모의 수상 객석을 조성했다. 송봉근 기자 |
지난달 31일 경남 진주성 외곽 야외무대에서 막을 내린 실경역사뮤지컬 ‘의기 논개’의 마지막 장면이다. 기생 논개가 진주성을 침략한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렸다는 그곳에서 역사를 재현했다. 지난 5월 한달간 총 10회 공연에 5400여 관객이 몰렸다. 안전을 위해 구명조끼를 입고 관람했다. 논개 투신 뿐 아니라 진주검무 전투 장면 등 야외 특성을 살린 연출이 돋보인다. 게다가 무대에 서는 11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전문 배우가 아니다. 이런 ‘연합부대’를 지휘하는 이가 고능석(57·극단현장 대표·사진) 연출이다. 지난달 23일 그를 만났다.
Q : 투신 장면 등, 바위 무대 난도가 높아보인다.
A : “사실 야외무대는 실내보다 10배는 더 어렵다. 공연 연습보다 바위 물때 청소가 더 오래 걸릴 정도다. 투신 장면엔 전문 잠수사가 대기하고 있고 배우들이 안전하게 헤엄쳐 나오도록 유도한다. 실제 역사 현장에서 공연한다는 게 국내에선 전례가 드물고 관객 역시 역사적 체험에 대한 각별함이 있어서 앞으로도 실내 극장에 가져갈 생각은 없다. 꼭 이곳에 와야 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진주 관광상품 패키지로 인지도를 쌓고 있다.”
Q : 애초엔 뮤지컬이 아니었다는데.
A : “원래는 매년 5월 초 진주 논개제의 부대 행사로 진행된 소규모 행위극이었다. 20여년전 우리 극단이 연기 지도를 맡으면서 점차 정극으로 발전시켰고, 독립 브랜드가 됐다. 생업이 있는 연기자들이 퇴근 후에 연습해 합을 맞추기도 한다.”
Q : 지역민과 쌓아온 역사도 있겠다.
A : “초창기 때 아역배우로 출연했다가 그새 성인이 돼 우리 극단을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과 봤던 공연을 아이 데리고 와서 본다는 N차 관람객도 있다.”
극단현장은 1974년 출범해 올해 51년이란 관록을 자랑한다. 지역 극단으론 드물게 상근 단원 제도(총 단원 44명 중 11명 상근)를 운영한다.
Q : 지역 연극의 한계는.
A : “주요 연극상이 대체로 서울 공연 위주로 주어진다. 인정을 못 받는다는 좌절감에 우울증도 왔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알아줄 거라 믿는다. 지역 극단이라 특색을 살릴 수도 있다. ‘진주 정신’이랄까, 임진왜란 때 의병이 많았던 지역색이 대표적이다. 우리같은 극단이 100년을 가야하지 않겠나.”
고 연출은 ‘진주 정신’을 실천하는 이로 ‘어른 김장하’ 선생(전 남성당한약방 대표)을 꼽았다. 조건 없는 베풂을 통해 ‘김장하 장학생’을 길러낸 그가 평소에도 강조하는 게 ‘주체·호의·평등’인데, 극단현장도 그 덕을 입었다. 고 연출은 “극단 전세자금이 부족해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3000만원을 주셨고, 나중에 갚으려 하니 ‘지역 예술이 발전해야 한다’며 사양하셨다”며 “이런 흐름이 진주 정신”이라고 말했다.
진주=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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