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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기재부 개편, 칼자루 쥔 사람만 바뀐다고 달라질까?

TV조선 송병철 기자(songb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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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기재부 개편, 칼자루 쥔 사람만 바뀐다고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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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 위치한 기획재정부 건물. 2008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출범한 기재부는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핵심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데 예산 편성 권한을 한 손에 쥔 이 슈퍼부처를 두고 조직개편 논쟁이 뜨겁다. 예산 기능을 중앙에 집중시킨 현재 구조가 효율적이라는 주장과 분산을 통한 견제와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여기에 대선 국면 정치권에서도 기재부 개편 이슈가 거론되면서 예산권의 향배가 경제정책의 유연성과 일관성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된다.
통합과 분리의 반복
예산 기능의 귀속 문제는 때때로 뜨거운 감자였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예산 권한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둘러싼 통합과 분리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재무부(현 기재부의 전신)가 발족했고, 1961년 경제기획원이 신설되며 국가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함께 정부 예산 편성권을 부여받았다. 재무부는 세제·금융·통화 정책을, 경제기획원은 5개년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국가 예산 편성 및 대외차관 협조 등을 맡아 예산권이 재무부가 아닌 별도 기구(경제기획원)에 존재하는 특이한 구조였다. 이는 개발시대 강력한 계획경제 추진을 위한 조치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했다. 세입(재정)과 세출(예산)을 한데 모아 일관되고 효율적인 경제 운용을 도모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막강해진 통합 부처를 두고 "공룡부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재정경제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해 불과 4년만에 재정경제원을 둘로 쪼갰다. 재정·금융·경제정책은 재정경제부에, 예산 편성과 기획 기능은 국무총리 산하 기획예위원회에 이관하였다. 이는 거대 부처 권한을 완화하고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려 한 조치였다. 실제로 이때 예산편성권을 분리함으로써 재경부(Ministry of Finance, MOF) 독주를 막으려 했다는 평가다. 이후 1999년 기획예산처가 공식 출범해 예산 편성 및 조정 기능을 전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지금의 기획재정부(MOSF)를 출범시킨 것이다. 재정 정책과 예산 기능을 한 지붕 아래 모아 거시경제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이때 금융감독 등 일부 기능은 금융위원회로 이관되고, 통상 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기는 등 조정이 있었다. 정부는 재정과 정책 조율 기능의 결합으로 정책 일관성을 높이고 부처 간 조율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봤다.

그간의 사례에서 보듯 통합→ 분리→ 재통합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정책 환경과 지향점에 따라 예산 권한의 집중과 분산이 교차해왔다. 문제는 어떤 구조가 경제정책의 실행력과 효율성을 극대화할지에 대한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예산권, 집중 vs 분산

한 부처에 예산 기능을 집중시키는 현재 구조와 이를 분산시키는 대안 사이에는 뚜렷한 장단점의 대비가 존재한다. 우선 정책 일관성과 거시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중앙 집중 방식이 정책을 조율하기 쉽다. 기획재정부 통합 모델은 재정 정책과 경제 정책이 한 손에 쥐어져 정책 간 엇박자를 줄이고자 한 산물이다. 한마디로 '조율된 한 목소리'로 경제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기재부는 경기 둔화 시 추경 편성, 호조 시 재정 건전화 등 거시적 판단 하에 일관된 대응을 주도해왔다. 또한 부처 간 중복예산 조정이나 우선순위 설정도 용이해 정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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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권한 집중은 경직성이라는 그늘도 낳는다. 중앙 부처가 모든 부처의 예산을 틀어쥐다 보니 각 부처의 창의적 정책 시도가 예산 단계에서부터 제약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기재부는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노동·복지·교육 등 분야에서 확장 재정정책을 가로막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거시적 재정 안정에 치중한 나머지, 미시적 정책 수요나 긴급 현안에 대한 신속 대응이 어려워지는 문제다. 2020~2021년 코로나19 위기 당시에도 적극 재정이 필요하다는 정치권과 긴축 기조를 고수하려는 기재부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산권이 한 곳에 몰리면 자칫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져 경제 현장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예산 기능을 별도로 떼어내거나 권한을 분산하면 권력 견제와 협력적 정책 수립의 장이 열릴 수 있다. 기획과 예산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경제정책 수립 부처와 예산 부처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잘못된 정책이나 예산 낭비를 걸러낼 가능성이 커진다. 가령 과거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 이원화 시절에 한쪽이 지나치게 긴축하면 다른 쪽에서 경기 부양 필요를 제기하는 식의 내부적 균형이 작동하곤 했다. 아울러 각 부처는 자신들의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적극 설득함으로써 정책 아이디어를 보다 풍부하게 펼칠 여지가 생긴다. 지금 논의되는 것처럼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 산하로 옮길 경우 선출권력이 국민적 요구를 예산에 더 직접 반영하여 정책 추진의 민의 반영성과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대통령 직속 예산관리국(OMB)이 예산을 총괄하면서 행정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배분을 민주적 통제 아래 신속히 수행하고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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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정책 일관성 저하와 조율 비용 증가의 위험을 수반한다. 과거 2000년대 초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뉘어 있던 시절, 두 부처 간 이견 조율에 시간이 걸리고 힘겨루기가 벌어져 정책 결정이 지연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 기재부의 한 관료는 "노무현 정부 때 재경부-기획예산처 간 예산편성 기싸움으로 일부 정책 추진이 늦어진 일이 잦았다"라고 말했다. 두 개의 수장이 엇박자를 낼 경우 정책의 일관성과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예산권이 청와대 등 정치권 중심으로 이동하면 선심성·민원성 사업 남발로 재정 누수가 심화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예산 기능 집중은 거시적 통합 관리와 일관성 측면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현장 대응의 경직성과 권력 남용 우려를 낳는다. 반대로 분산은 유연성과 견제를 가져오지만 조율의 어려움과 통합성 저하 위험을 안고 있다. 실리적으로는 이 둘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美·日·獨 사례는
우리의 선택을 가늠하기 위해 주요국의 재무부 구조와 예산권 운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산기능을 운용하고 있으며 그 경험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연방 예산의 편성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대표적 사례다. 1921년 연방법 제정으로 대통령이 매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토록 하고 이를 보좌하기 위한 백악관 직속 예산관리국(OMB)을 설치한 이래 지금까지 이런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재무부(Department of Treasury)는 세입 확보와 국가채무 관리, 금융정책에 집중하고, 지출 우선순위 결정은 OMB를 통해 대통령이 주도한다. 실제로 코로나19 경기부양 법안,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거대 재정정책을 추진할 때 백악관 주도의 예산 편성이 신속한 대응을 가능케 했다. 다만, 견제 장치로서 의회의 예산심의권이 강력하고, 행정부의 재정 남용을 막기 위해 미국은 입법부와 행정부 간 권력 분산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앙정부부채 GDP 대비 비율

OECD 회원국 중앙정부부채 GDP 대비 비율



일본은 우리 기재부의 기본 구조의 유사하다. 전후 일본의 대장성(현 재무성)은 예산 편성권을 쥔 주계국을 필두로 세제국, 국제금융국 등을 거느린 관청 중의 관청, 관청가의 왕으로 군림해왔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재무성 주계국의 입김은 막강해 각 부처가 예산 요구를 하면 이를 재무성이 철저히 심사·삭감하는 구조다. 이런 덕분에 일본 재정운용은 관료적 안정성과 일관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무성 관료들은 경기 부양 필요성보다는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국가 채무관리와 예산 낭비 억제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관료 주도의 예산 통제는 역으로 정치권과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적극 재정 투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1990년대 장기 불황기에도 재무성은 지출 확대에 소극적이어서 경기 회복이 지연됐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최근엔 정치권의 영향력이 다소 커져 2000년대 경제재정자문회의 신설 등으로 수상(총리)의 재정정책 주도권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독일은 연방재무부(BMF)가 예산 편성의 중심이지만, 강력한 법적 제어장치를 두고 있는 사례다. 독일 재무부 장관은 예산안을 편성해 내각과 연방의회에 제출하는 책임을 지며, 연방의회는 이를 심의·승인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수정 권한을 갖는다. 특히, 독일은 헌법에 재정건전화 조항(일명 채무 브레이크, Schuldenbremse)을 명시해 평시에는 구조적 재정적자가 GDP 대비 0.35%를 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무부라 해도 법률이 정한 재정규율 안에서만 예산을 편성할 수 있어 방만한 재정 운용 여지가 줄어든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늘었던 국가채무를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 또 독일은 경제·기후부처럼 재정 외에 실물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별도로 존재해 재정은 재무부, 산업·경제 정책은 경제부로 역할이 분담돼 있다. 최근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응해 특별예산을 편성하는 등 예외적 지출을 할 때도 의회 동의를 얻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예산권, 누구보다 어떻게가 중요
기획재정부의 무조건적인 해체는 답이 아닐 수 있다. 대신 국내외 사례가 시사하듯 일관된 전략 아래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조직 운용의 묘(妙)를 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의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민생 현장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현재 논의되는대로 예산 편성 권한이 대통령실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정치적 청부예산을 남발하지 않도록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제도화하고, 예산편성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장치를 함께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미국식의 정책 추진력을 취하면서도 의회민주주의적 통제를 접목할 수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이와 별개로 현재 기재부의 역할과 문화 개선도 필수적이다. 기재부는 부처 위에 군림할 게 아니라 각 부처의 정책 전문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며 재정적 관점에서 조율하고 지원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재부가 스스로 이런 변화를 모색한다면 굳이 조직을 쪼개지 않고도 정책 유연성 제고라는 개편 논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또한 권한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재정 건전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안전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일식 채무브레이크와 같이 한국도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를 조속히 마련해 누가 예산을 편성하든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 예산심의 기능을 강화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독립적인 재정평가위원회 등을 두어 대통령실이나 기재부의 예산안에 객관적 분석과 견제를 가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예산권 구조 개편에 따른 예산 남용이나 경직 운영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일관성과 효율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 개편이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재부 개편 논의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 경제정책의 기획-집행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재부를 없앤다, 안 없앤다'식의 이분법을 넘어 어떻게 해야 우리 경제에 가장 실익이 될 것인가를 냉철히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부처 간 힘겨루기나 권한 배분 자체보다는 정책이 얼마나 일관되게 추진되고 효과를 내는지에 관심이 많다. 경제적 실익을 위해서는 때로는 관행화된 관료문화의 혁신이 조직도 개편보다 우선일 수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중요한 것은 국민 신뢰를 얻는 경제정책 결정구조를 구축하는 일이다. 기재부가 진정한 컨트롤타워로서 거듭나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내재화할 때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유연성은 비로소 동시에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답은 '누구냐'가 아니라 '어떻게'에 있다.

송병철 기자(songb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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