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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버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선 넘는 학부모 민원, 무방비로 노출된 교권

매일경제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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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버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선 넘는 학부모 민원, 무방비로 노출된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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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민원 시달리던 교사 사망
교권 보호 위한 목소리 커졌지만
학교 민원대응팀 작동 제대로 안돼


지난달 24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민원대응팀은 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애초에 어디까지가 ‘학부모 민원’인지에 대한 합의 조차 없어 민원대응팀이 아닌 담당 교사들이 민원에 일일이 대응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민원대응팀 조직이 교감 등 기존 학교 인력이 겸직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까닭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작동할 일 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달 22일 제주에서 민원에 시달리던 중학교 교사가 사망하면서 교권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2일 지방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반복되는 악성 민원과 주먹구구식 정부 대책에 지칠대로 지쳤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A씨는 15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중견 교사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학부모 민원에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한다.

그는 “교사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학생도 있지만, 훈육을 하면 보호자가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협박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결국 아동학대 사건으로 넘어가면 피해자는 교사인데, 근본적인 대책도 없이 민원대응팀 같은 걸 만들어 절차만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 현장에선 학부모 전화 모두를 민원대응팀이 응대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잘 아는 부분에 대해서는 담임 교사가 직접 응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린다”면서 “학교 생활에 대한 것도 어디까지가 민원이고 어디까지가 민원이 아닌지에 대한 교사들의 합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20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교사들 사이에서 ‘교권 보호’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육기본법·아동학대처벌법)을 고치는 등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악성 민원 대응 차원에서 민원대응팀 구성·운영은 물론 교육활동 침해 보호자를 상대로 서면 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 등의 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A씨의 증언처럼 민원대응팀 운영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학교별로 교장, 교원, 행정실장, 엄무담당자 등으로 민원대응팀을 구성한 상태다. 학부모 민원에 대해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 차원에서 민원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전화나 온라인 등 모든 민원을 민원대응팀이 통합 접수한 뒤, 사안에 따라 담당자 또는 학교장이 처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주 교사의 사례처럼 반별로 걸려오는 전화를 담임 교사가 처리하기 일쑤다.


20년차 초등학교 교사 B씨가 전하는 현실도 비슷하다. B씨는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 휴직을 고민하는 동료 교사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원대응팀에 대해 “민원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다”면서 “학부모 입장에선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걸 교사가 기분 나쁘게 받아 들이면 민원이고, 질문이나 의견 중 하나라고 하면 민원이 아닌 것이냐”고 반문했다. 일부 교사는 학부모와 교사가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온라인 메신저 기능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 한 명으로 인해 해당 반은 물론 학교과 초토화되는 것은 순식간”이라면서 “민원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교사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정당한 교육활동은 아동학대를 적용하지 않는 아동복지법 개정 등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을 분리해 별도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력도 충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선 위기 학생 교육 뿐 아니라 위기 학생의 보호자 교육도 같이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번 제주 교사 사건은 ‘제2의 서이초 사건’”이라면서 “교육 당국과 수사 기관에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악성 민원 제기가 확인될 경우 민원인에 대한 교육청의 고발과 함께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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