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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클수록, 마음보다 몸이 먼저입니다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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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클수록, 마음보다 몸이 먼저입니다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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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밀어내거나 반대로 끝없이 파고드는 방식은, 오히려 감정의 파도에 갇혀 조절력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 행동, 신체 반응 등에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표적인 행동은 심호흡을 크게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감정을 밀어내거나 반대로 끝없이 파고드는 방식은, 오히려 감정의 파도에 갇혀 조절력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 행동, 신체 반응 등에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표적인 행동은 심호흡을 크게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감정과 생각, 몸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체계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안할 때 ‘이번 시험은 망한 것 같다’ 같은 부정적 생각이 떠오르고, 이러한 생각이 ‘숨이 막히며 어깨가 뻣뻣해지는 몸의 반응’을 즉각 유발합니다. 이러한 신체 반응은 다시 불안의 강도를 높이고, 불안은 또 다른 부정적 사고를 자극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이처럼 감정, 사고, 신체 반응이 맞물려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는, 심리적 고통이 만성화되는 마음의 작동 원리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불편한 감정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잊자”, “생각하지 말자”라고 되뇌며 억누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쇼핑, 술처럼 기분을 바꾸는 활동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계속 곱씹기도 합니다. 이처럼 감정을 밀어내거나 반대로 끝없이 파고드는 방식은, 언뜻 보기엔 기분을 다독이거나 의미를 더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감정의 파도에 갇혀 조절력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 생각, 몸이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감정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그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 행동, 신체 반응 등에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의식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생각이나 행동, 몸의 반응은 보다 구체적이고 의도적으로 다루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이나 행동, 몸의 반응을 어떻게 다뤄볼 수 있을까요?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이 점점 커지는 일상적인 상황을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직장인 ㄱ씨는 몇 달 동안 준비한 기획안을 이사 앞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발표 전날 밤, ‘실수하면 어쩌지’, ‘망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긴장이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밤을 꼬박 새운 채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출근 후에도 머리는 멍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고, 회의실 앞에 서자마자 ‘이러다 발표 중에 기억이 안 나서 버벅일지도 몰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ㄱ씨가 불안한 마음에 더욱 집중할수록 파국적인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몸은 더욱 긴장될 것입니다. 이때 몸의 반응을 먼저 안정시킴으로써 불안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우리 몸은 자율신경계가 안정될 때,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발표 직전 조용한 공간에서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호흡을 몇차례 반복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손끝, 발바닥, 심장의 박동, 가슴의 오르내림 등을 의식적으로 느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불안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머물러 있는 채로, 현재의 감각에 집중해 몸의 반응을 안정시키면 불편한 감정의 크기도 서서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불안은 흔히 우리의 행동을 위축되게 합니다. 이때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보다, 작더라도 구체적인 행동을 의식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감정의 흐름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ㄱ씨가 발표 전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불안을 견디기보다 작은 행동 계획을 세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안의 순환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발표 자료는 1회만 점검하고, 그 이후에는 샤워나 스트레칭처럼 긴장을 완화시켜주는 활동을 의도적으로 하는 식입니다. 이처럼 정해진 작은 행동들을 의식적으로 하다 보면, 지금의 상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효능감이 회복되고, 감정의 흐름 역시 점차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ㄱ씨는 “실수하면 끝이다”와 같이 반복되는 부정적 생각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충분한가?” “이 상황을 다른 사람이 겪는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줄까?”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상황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떠오른 생각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점검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재구조화(cognitive restructuring)라고 부릅니다. 이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자동적 사고의 흐름을 유연하게 바꿔, 불편한 감정에 덜 휘둘리도록 돕는 생각바꾸기 방법입니다.



감정은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막으려 할수록 더 거세지고, 잠기지 않으려 버티다 보면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불편한 감정 그 자체를 없애려 하기보다, 잘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작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감각을 느끼고, 떠오르는 생각을 바라보고, 내가 취하는 작은 행동을 의식하는 것, 여기서부터 감정 다루기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지금, 혹시 화가 나시나요? 그렇다면 몸에서는 어떤 감각이 느껴지나요? 무슨 생각이 떠오르고,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김영주 온더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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