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등단 9년차 소설가 김홍이 지난 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
등단 9년차 소설가 김홍(39)이 장편 ‘말뚝들’로 2025년 한겨레문학상 당선자로 뽑혔다. 제3회 수상자 한창훈, 15회 최진영, 22회 강화길 등 등단·기성 작가 출신 계보를 이으면서도, 발간 작품 수나 작품 세계, 문학상 이력 등에 있어 가장 올돌한 경력을 내보인다.
심사위원 8명은 지난 29일 서울 마포 한겨레출판사에서 진행한 최종심사를 통해 이렇게 결정했다.
지난 3월 말 마감한 제30회 한겨레문학상의 응모작은 모두 349편으로 8편이 본심에 올랐다. 전년보다 110편이 증가해 최종심 일정을 늦춰야 했다.
심사를 맡은 소설가 이기호·정지아·편혜영, 평론가 서영인과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 강화길·박서련·심윤경·한창훈은 “재미, 거침없는 문장, 계엄 사태를 놀라운 속도로 반영한 시의성, 설교 없는 서사” 등을 당선작 선정 사유로 꼽았다. 소설은 말뚝의 형상으로 정체불명의 죽음이 바다에서 뭍으로, 뭍에서 도시, 우리에게로 압박해오는 가운데, 혼란에 ‘블랙코미디’를 더하는 포고령 정부, 기억과 연대를 필요로 하는 소외자를 대비시킨다.
김홍 작가는 1986년 서울 출생으로, 1년여 기자를 하다 전업 작가로 나섰다. 2017년 신춘문예 등단작 ‘어쨌든 하루하루’ 등 8편이 엮인 첫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2021), 첫 장편 ‘스모킹 오레오’(2020) 이후 장편 두 권과 소설집 한 권을 더 상재했다. 2023년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한겨레에 “이미 당선 통보가 된 것으로 생각해 다른 공모전에 작품을 내려고 했다”며 “연락받고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는데, ‘계속 쓴다’ 이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겨레문학상은 올해 서른돌을 맞아 예년보다 많은 5천만원 고료로 진행됐고, 당선작 단행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발간 일정 또한 늦춰 8월 예정이다. 한겨레문학상 30주년 앤솔러지도 나올 참이다. 시상식은 8월1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종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2시간 논의 뒤 표결을 통해 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작가 한창훈, 평론가 서영인, 작가 정지아·박서련·심윤경·이기호·강화길·편혜영.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심사평
당선작 두고 “미스터리, 페이소스, 유머로 견고한 윤리의 문학 성취”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응모작은 ‘눈먼 마녀와 롱테이크로 찍은 중세의 밤’, ‘드림빌 전세 사기 피해자 러닝 동호회’, ‘붉은 피아노’, ‘오발 청년’, ‘원산, 1929’, ‘불씨 찾기’, ‘말뚝들’, ‘작은 빛의 사자’ 총 여덟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완결성과 미학적 특질 등을 중심으로 1차 논의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눈먼 마녀와 롱테이크로 찍은 중세의 밤’, ‘드림빌 전세 사기 피해자 러닝 동호회’, ‘말뚝들’을 집중 심사 작품으로 삼았다.
‘드림빌 전세 사기 피해자 러닝 동호회’는 시의성 있는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서사화하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다. 연희대 후문에 위치한 원룸 ‘드림빌’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사건을 기점으로, 운동장 안과 밖을 종횡하며 전개되는 이 작품은, 오늘날의 피로와 상처, 연대와 회복을 정직하게 기록한다. 특히 한 장소에 대한 밀도와 상징, 핍진성은 단연 눈에 띄는 미덕이었다. 다만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다소 도식적인 결말(일기 형식)로 수렴되었다는 인상이 남았다. 인물 개개인의 고유한 감정과 내면의 복잡성을 보다 섬세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면, 이 소설은 사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깊은 울림을 남겼을 것이다.
‘눈먼 마녀와 롱테이크로 찍은 중세의 밤’은 상상력의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었다. 중세라는 비현실적 배경, 하나의 꿈에서 시작된 서사는 에이아이(AI)와 ‘매스 드림’이라는 집단 무의식을 경유해 대중의 환상, 루머, 집착을 밀도 높은 문장과 이미지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구사하는 문체의 압도적인 생기와 감각적 정렬에 주목했다.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쉽게 목격되지 않았던 서술의 활력과 미학적 파괴력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가장 독자적인 성취였다. 다만, 꿈에서 깨어나는 결말이 일종의 자아 찾기나 정체성 서사로 환원되며 예상 가능한 구조로 수렴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보여준 실험적 정서와 새로운 문법은 충분히 문학장의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수상작이 되지 못한 이유는 단지 같은 자리에 다른 작품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작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의 영예는 ‘말뚝들’에 돌아갔다. 심사 초반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던 이 작품은, 사망한 사람들이 ‘시랍화’되어 도심 곳곳에 말뚝으로 출현한다는 기이한 설정으로부터 시작된다. 허황한 듯 보이는 이 전제는, 그러나 작품 내내 굳건히 유지되며, 미스터리적 구성과 페이소스, 유머의 결을 통해 견고한 서사로 발효된다. 사소한 불행에 무력하게 흔들리는 주인공 ‘장’. 그는 그 와중에 점점 더 타인을 망각하고 외면하며, 그 결과 모든 관계는 엉망이 되어간다. 이 파탄의 시공에서, 소설은 끝내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타인을 기억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작품은 현재의 정치적 풍경과 위기의 징후들을 비켜가지 않고, 문학의 방식으로 응전하고 있다. ‘계엄’과 ‘내란’이라는 말들이 현실에서 되살아난 지금 이 시기에, ‘장’이 비로소 말뚝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도래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서사는 상징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지금, 여기’의 우리를 다시 사유의 자리로 끌어내겠다는 작가의 신념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한겨레문학상이 걸어온 30년의 궤적에 부응하는 의미 있는 성취이자, 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윤리의 형식이라는 믿음을 되살려준 작품이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어서 빨리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이 함께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퇴근 후 어두운 집에 들어섰을 때, 그곳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말뚝을 모두와 함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심사위원 강화길 박서련 서영인 심윤경 이기호 정지아 편혜영 한창훈(대표 집필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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