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중구의 한 투표소에서 김모씨가 부정선거인지 감시한다며 투표장을 찾은 시민들의 수를 흰 종이에 '바를 정' 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본투표를 이틀 앞두고 부정선거론자들의 분탕질로 얼룩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 등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 종교단체 등이 기름을 붓자, 부화뇌동한 이들이 선거 사무와 투표를 방해하는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선거제도의 신뢰를 해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좀먹는 중대 범죄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달 29, 30일 사전투표 기간에 ‘부정선거 감시단’을 자처하는 이들이 전국 투표장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경기 수원시에선 부정선거 관련 단체 관계자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폭행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했다. 화성시에서도 선거사무 방해 및 협박 신고가 접수됐고, 경남 하동군에서는 선관위 침입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에선 ‘투표장으로 가 중국인을 색출하기 위해 한국어 테스트를 하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 과격한 선거 방해 중심에는 음모론을 이용해 지지자를 규합하려는 정치인의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달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하며 음모론에 힘을 실었고, 황교안 후보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다가 선관위에 고발까지 당했다. 정치인의 주장은 종교단체의 ‘행동력’으로 힘을 얻는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 측이 꾸린 단체가 사전투표에 나선 유권자의 수를 일일이 세고 있는 장면도 목격됐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에 중앙선관위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선관위는 ‘선거 행위’만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선거제도의 전반적 신뢰성도 수호해야 하는 기관이다. 일각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무시할 게 아니라, 좀 더 일찍 의혹을 적극 해명하고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다. 선관위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부실 선거’가 부정선거론에 빌미를 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선거제도 위에서 민주주의 꽃을 피워야 할 정치권도 책임이 적지 않다. 사익을 위해 선거의 신뢰를 훼손하는 세력을 방치하면 대의제와 정당제의 근간이 위협받는다. 특히 국민의힘은 부정선거 세력과의 완벽한 절연을 천명하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 행위를 근절할 제도적 장치 마련에 동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