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 방화 사고 발생 직후 객차 내부에 진입한 소방대원들이 잔불 정리와 상황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운행 중이던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에서 지난 토요일 방화로 인한 화재가 났다.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60대가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열차에는 40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어 자칫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는데, 기관사와 승객들이 열차 내 소화기를 이용해 큰불로 번지는 걸 막았다. 시민들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처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나 적절한 대피 유도가 이뤄지지 않는 등 대응 과정의 문제점도 확인됐다.
불은 이날 오전 8시 43분쯤 총 8량인 열차 중간 지점에서 발생했다. 열차가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마포역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승객들은 객차 안에 연기가 차오르자, 기관사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가 “불이야”라고 외치며 운전실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지하철 출입문도 개방되지 않아 승객들이 의자 하단의 비상 개폐 장치로 문을 열고 탈출해 선로를 통해 대피했다.
28년 차 베테랑 기관사가 응답하지 못한 건 그 시간 시민들과 불을 끄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5~8호선은 기관사 한 명만 탑승하는 ‘일인 승무제’로 운행되는 탓이다. 기관사 혼자 열차 운행과 출입문 개폐, 안내 방송, 민원 대응 등을 모두 담당해야 한다. 그동안 비상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는 게 불가능한 업무 체제라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스크린도어와 폐쇄회로(CC)TV 등으로 안정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열차 내 보안카메라 영상은 관제센터에 실시간 전송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애초 역무실이나 도시철도 상황실 등에서 열차 내 상황을 살필 수 없었다.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전동차 내장재는 불에 타기 쉬운 소재에서 스테인리스 등 불연성·난연성 소재로 교체됐다.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뒤다. 이번 방화 사건에서도 지하철 방재 시스템의 허점이 새로 확인됐다. 다행히 이번엔 인명피해가 없었어도, 철저한 안전 점검과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