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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는 경쟁 없는 세계…이기면 주저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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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는 경쟁 없는 세계…이기면 주저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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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일본 사상가·저술가 우치다 다쓰루



지난 28일 우치다 다쓰루가 ‘아이브’ 주최 콘퍼런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브 제공

지난 28일 우치다 다쓰루가 ‘아이브’ 주최 콘퍼런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브 제공


‘무도가’ 사상가로 알려진 우치다 다쓰루(75)가 한국을 방문해 강연을 가졌다. 인터뷰 잡지 ‘아이브’ 주최로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였다.



그는 ‘하류지향’ 등을 통해 사회학자, ‘교사를 춤추게 하라’ 등을 통해 교육자, ‘사랑의 현상학’ 등을 통해 레비나스 연구자, ‘속국 민주주의론’ 등을 통해 평화주의 운동가로 알려진 독특한 인물이다. 최근에는 그런 근엄한 모습을 떠나,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와 ‘무지의 즐거움’ 같은 책을 통해 인생과 철학을 쉽게 풀이하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최근의 두 책은 우치다 철학의 한국적 소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무지의 즐거움’은 25가지 질문을 하고 우치다가 답하는 형식으로 한국에서 기획되었고,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는 오랫동안 우치다의 제자 노릇을 한 박동섭이 도서관과 책에 관한 스승의 글을 모은 것이다. 방한을 맞아 그의 무도 철학을 집적한 ‘목표는 천하무적’(도서출판 유유)과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라는 데서 기획이 시작된 ‘용기론’(알에이치코리아)이 나왔다. 그의 책은 일본에서 100여권 출간됐고, 한국에서 번역된 것만 40여권이다.



한국에서 여러 얼굴로 알려진 것처럼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도 여러 모습이 있다. 그는 주로 자신을 ‘무도가’로 소개한다고 한다(‘목표는 천하무적’).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퇴직한 뒤 집 1층에 개풍관(가이후칸)이라는 합기도장을 열었다. “언제라도 수련을 하기 위해서다.” ‘무지의 즐거움’에서 그는 자신의 직함으로 ‘전도자’가 적절할 것 같다 한다. 카뮈, 레비나스 외에 무도 스승 다다 히로시, 음악가 오타키 에이치 등의 해설가·설명가라는 것. 강연에서 레비나스와 다다 히로시라는 스승을 두고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목표는 천하무적’. 도서출판 유유 제공

‘목표는 천하무적’. 도서출판 유유 제공


강연에서도 특유의 서사 특징대로, 자신의 사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합기도를 처음 배울 때 다다 스승이 왜 배우는지를 물었다. 그는 “싸움에서 이기려고”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크게 웃으며 그렇게 시작해도 돼, 라면서 받아주었다. 수행은 첫번째 생각했던 목표가 없어지고 두번째 목표가 생기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시작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 스승이 웃으며 이야기한 것은 무도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무도는 경쟁이란 없는 세계였다. “무도에서는 이기는 것이 더 나쁘다. 이기는 것은 주저앉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는 것에 안주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이겨서는 안 된다. 종교의 목표가 해탈이듯이 수행의 목적은 천하무적이다.”





‘하류지향’ 낸 사회학자·무도 사상가
레비나스 연구자이자 평화 운동가
100여권 저술 중 40권 한국어 번역
대학교수 퇴직 뒤 합기도장 열어





무도철학 담은 ‘목표는 천하무적’
용기 강조한 ‘용기론’ 최근 국내 출간
“무도 철학이 아시아 연대 출발점”





그는 다다를 50년째 모시고 있는데, 공부할 때도 ‘사제 관계’가 되었다. “사제 관계가 된다는 게 뭔가를 배울 때 효율성이 좋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책을 읽으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잠깐이 아니라 몇 시간을 앉아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랬다. 이건 프랑스어를 모르거나 철학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제자가 되자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제자와 연구자의 차이는 이렇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연구자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제자는 기분이 좋아진다. 스승은 저렇게 탁월하다고 생각하고 더 정진하게 된다.” 노력 부족을 자각하면서 계속 ‘깔짝거려’보는 것이 제자로서 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레비나스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예외적인 학자”의 자세에는 이런 비밀이 있다.



‘용기론’.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용기론’.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무지의 즐거움’에서도 이야기하듯 ‘무지’의 자각이 그를 앞으로 민다. “도서관을 걸으면 읽은 책이 거의 없다. 이렇게 모르며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집에 책이 많다. 서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몇 권이냐고 묻고, 2만권이라고 하면 모두 읽었냐고 물어본다. 서재의 책 30%도 읽지 않았다. 서재의 대부분을 읽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책들이 읽어달라 아우성을 친다. 내가 이걸 안다가 아니라 이것을 모르는구나,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불쌍해할 겨를도 없이,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수행자의 독서법이다.”



그는 한·중·일의 공통점 또한 ‘수행’에 있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용기론’과 ‘목표는 천하무적’ 모두 동서양 인간관의 차이를 ‘아이덴티티’(정체성)에서 찾는다. 서양에서의 인간의 성숙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라면, 한·중·일·베트남 등 아시아에서는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한발씩 더 정진하는 것이다. ‘무도가’의 정신과 통한다. 그는 무도가라는, 한국에서는 드물어진 삶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에 가닿는 것이 아시아적 연대의 출발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무도가’라는 것만 아니라 ‘마르크스 철학자’라는 점도 한국에서 자신을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마르크시즘은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사유할 기회를 빼앗긴 사상이다. 그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고 한국 문화 속에 있는 마르크시즘을 제대로 길어 올리는 것 또한 젊은 세대에서 가능하리라고 짐작했다. 무도와 마르크시즘에 공히 해당하는 말이다. “외래의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깊은 곳에 있던 것에 손이 닿는, 따라 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아카이브에서 분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할 거라고 믿는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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