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뉴시스 언론사 이미지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연극 '유령'

뉴시스 김주희
원문보기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연극 '유령'

서울흐림 / 2.3 °
무연고자 삶과 죽음 다룬 고선웅 창작 신작 '유령'
현실과 극 오가는 구성…"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
다음 달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출연 배우 이지하가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출연 배우 이지하가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아무리 억울한 역할도, 아무리 비참한 역할도 결국엔 퇴장이구나."

연극 '유령'의 막바지, 시신안치실을 떠나지 못하던 유령들이 마침내 '세상'에서 올라가며 외친다.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라는 문장에서 시작된 '유령'을 잘 나타내는 대사다.

고선웅 연출은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인생은 연극처럼 사는 거란 생각이 든다"며 이번 작품에 담은 메시지를 밝혔다.

'유령'은 '스타 연출가'이자 서울시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인 고 연출가가 14년 만에 발표하는 순수 창작극이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지만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죽은 후 시신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고 연출은 이번 작품 작업에 대해 "홀린 듯 글을 썼다"며 "사람이 인생을 선택해서 세상에 왔다는 것을 믿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버무려 서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극은 무겁지 않다. 여기에는 현실과 연극을 수시로 옮겨가는 독특한 구성이 한 몫한다.


"연극과 인생은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현존한다"는 대사로도 나타내듯 무대에 선 인물들은 극 중 배역과 배우인 자신을 계속해서 오간다.

배명순을 연기하는 이지하가 어느 순간 '배우 이지하'로 돌아가 "내가 방송하다 10년 만에 연극한다는 데 왜 이러는 거야"라며 진짜 현실을 담아내는 장면 등이 그렇다.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한 이지하는 "이번 작품을 할 때 물과 같은 존재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가진 배우로서의 생각은 내려놓고, 연출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마인드가 이 작품과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대한 연기하지 않고 무대에서 이 이야기의 존재로 반응하려고 한다. 연기가 거칠 수도, 미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작품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30년을 연기했는데 이런 생각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극에서 유령1이자 신현종을 맡은 신현종은 "연출님과 술자리에서 이 작품이 168번째 연극이라고 했더니 그걸 대사로 넣어줬다"며 "신현종이든 유령 1이든, 168번째 역할인데 재밌게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무대감독과 이봉달 등을 연기하는 이승우는 "초반에 연기 연습과 분석을 많이 했는데 연출님이 '(그런 분석은) 필요 없다. 연기처럼 안 보였으면 좋겠다. 관객에게 '이게 뭐지'하는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런 쪽으로 연습을 안 하면 혼나기도 했다. 특이한 연극 같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연출 고선웅이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연출 고선웅이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순식간에 극 중 배역과 자신을 오가는 배우들처럼 무대는 분장실이 되기도, 시신안치실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무대 한쪽에는 커다란 분장실 거울이 배치돼 있다. 배우들은 거울을 보며 분장을 지우거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고 연출가는 "세상을 살며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며 "거울을 통해 관객이 여러 상념을 느끼고, 자꾸 자기가 생각나길 바랐다. 좋은 오브제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냥 밝게만 진행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잊히고 지워진 존재인 유령들은 시신안치실에서도 떠나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그런 그들이 절망을 멈추고 퇴장하길 바라며, 마침내 화장이 이뤄진다. 세 유령은 자신의 시신에게 작별을 고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출연 배우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극단 연극 '유령' 출연 배우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막 시연을 하고 있다. 연극 '유령'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배명순'이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게 된 후 시신 안치실에서 유령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우리 주변 무연고자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025.05.30. pak7130@newsis.com



이때 배우 얼굴의 본을 뜬 데드마스크가 활용된다.

이지하는 "데드마스크를 뜰 때 너무 힘들었다. 과호흡이 와서 그날 밤 구토를 하고, 두통약을 먹기도 했다. 죽는 게 쉬운 건 아니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이를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분명히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아닌 것 같고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신 것도 같더라. 슬프다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과 비슷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 장면에서) 대사가 있지만 자꾸 멈추게 된다. 그 감정을 아직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하다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보탰다.

작품은 '있어도 없는' 존재들과 반복되는 대사를 통해 "사람으로 났다면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 연출가는 "선택하지 않은 세상에 떨어져서 이런 고통 속에 산다고 하면 부처님이 깨우치려 하신들 안 될 것"이라며 "내가 이 역할을 세상에서 선택했다고 하면 이 역할은 그냥 재미있는 일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없는 얘기 하지 말라 하시겠지만 그럼에도 인생은 연극처럼 사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배우의 인생 이야기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도 사실 그런 거 아닐까요. 해가 지날수록 그렇습니다. 인생의 분별을 내려놓으면 복잡한 연극은 아닐 겁니다."

이날 개막하는 '유령'은 다음 달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공감언론 뉴시스 juhee@newsis.com

▶ 네이버에서 뉴시스 구독하기
▶ K-Artprice, 유명 미술작품 가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