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부담 10년새 급증 조사
역대 정부 규제개혁 ‘제자리 걸음’
각 당 후보들 규제개선 동의, 방법론 이견
경제5단체 “원점에서 과감한 검토·시도 절실”
역대 정부 규제개혁 ‘제자리 걸음’
각 당 후보들 규제개선 동의, 방법론 이견
경제5단체 “원점에서 과감한 검토·시도 절실”
서울 여의도 일대 오피스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올해 0%대 초저성장이라는 암울한 경제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경제살리기 총력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 속에, 경제계는 “우리 기업들의 족쇄가 되는 규제에 대한 개혁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기 초반부터 과감한 시스템 개선으로 성공사례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문가 조언도 이어진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달 28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AI 메모리반도체 기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기업 부담 오히려 증가” 역대 정부 규제개혁 ‘도돌이표’= 30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역대 정부는 출범 때마다 규제개혁을 핵심 정책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규제에 대해 ‘전봇대’, ‘손톱 밑 가시’라고 각각 규정했고,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도 ‘붉은 깃발’, ‘모래주머니’ 등으로 표현하며 강한 규제개혁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임기 말로 갈수록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활력을 잃었고, 결국 용두사미로 끝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정책평가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기업부담지수(Business Burden Index·BBI)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15년 기업들의 규제 부담은 당시 88.3에서 올해 102.9로, 10년 사이 약 15포인트 급증했다.
BBI는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행정·조세 등 부담 수준을 측정해 수치화한 지수다. 100 이하면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고, 100 이상이면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으로 분류된다.
세부적으로 노동규제는 같은 기간 105에서 112로 상승했고, 진입규제(69→101.1), 환경규제(96→99.3), 입지·건축규제(82→99.2) 등 대다수 분야에서 부담이 증가했다.
특히 일선 행정규제 부담의 경우 10년 전 77에서 올해는 111로, 10년 동안 34포인트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커지면서 일선 규제가 오히려 늘고 행정 지연 등 기존 관행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체감 부담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는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를 중심으로 고용유연성이 지극히 낮은 우리 노동시장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국회를 중심으로 늘어난 규제 법령 등에 대한 압박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김문수(오른쪽)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26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간담회를 갖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이재명 “규제합리화”, 김문수 “규제혁신처”, 이준석 “규제기준국가제”= 각 대선 후보들은 불필요한 기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열린 경제분야 대선 정책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업 규제 완화, 해소 이렇게 말하지 말고 합리화하자”면서 “필요한 규제는 강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해제하거나 완화하자, 합쳐서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 규제는 불필요한 규제가 많다. 공무원들이 자기 편하려고 하는 규제가 많은데 그런 것은 당연히 줄여야 한다”면서 “또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신설 규제도 가능하면 절제가 필요하다”며 규제 합리화를 통한 행정 서비스 쇄신 등을 강조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규제개혁에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이다. 김 후보는 “‘규제혁신처’를 만들어 규제를 상시 관리 감독하고 철폐하겠다”면서 “또한 ‘자유경제혁신기본법’을 제정해 신산업이 규제로 발목 잡히지 않도록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민원담당수석 도입 등을 통해 기업 규제 자체를 완화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에 특화된 규제 특례를 신청하면 중앙이 법제도 정비하는 ‘메가프리존’을 신설하는 공약도 제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이스라엘 기업들이 미국과 기준을 맞춰 세계로 뻗어가듯 우리도 타국과의 규제 격차를 없애야 한다”면서 ‘규제기준국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청자가 기준국가의 규제 사례를 제시하면 해당 규제 수준을 국내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특별 허가제를 신설하고, 국무총리 산하 ‘규제심판원’을 신설해 신청부터 특례 부여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고 분야별로 분산된 신청 창구를 통합해 규제 대응을 일원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경제계는 각 후보들의 공약에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부 공약에서는 구체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 출범 직후부터 과감하게 변화 방향을 잡고, 구체적인 성공사례를 빠르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 체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네거티브 규제는 정부가 특별히 금지하도록 규정한 것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규제방식이다.
▶경제계 ‘규제개혁 6대 방안’ 제시…“최우선 국정과제로”= 경제5단체는 최근 회원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 ‘제21대 대선-미래성장을 위한 국민과 기업의 제안’ 제언집을 공동 작성해 각 주요 정당에 전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규제개혁 분야와 관련 ▷통합솔루션 ‘메가샌드박스’ 추진 ▷지역혁신 위한 광역지자체 재정·권한 확대 ▷네거티브 전환을 통한 규제시스템 혁신 ▷국민배심원제 통한 규제갈등 해소 ▷입법영향평가 도입 ▷민관합동 규제개혁 추진체계 마련 등 여섯 가지 구체적 방안이 제시됐다.
메가샌드박스는 광역 지자체 단위로 미래산업 및 기술을 각각 지정하고, 파격적 인센티브·규제완화·인프라 구축 등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복합 솔루션을 의미한다. 경제5단체 측은 “메가샌드박스 정책을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혹은 부처를 신설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메가샌드박스 특별법 제정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입법영향평가의 경우 정치권의 과잉규제 입법으로 민간 경제와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규제 법안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정부 입법에 반영되는 규제심사를 의원 입법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규제 입법영향평가’ 제도의 도입 필요성 역시 경제계와 전문가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여야 상당수 의원들은 입법영향평가 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는 실정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규제 입법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6건 발의됐으나, 논의에 특별한 진전 없이 전부 폐기되기도 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현재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인 만큼, 성장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성장 방법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과감하게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차기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성장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국규제학회 연구위원장인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불확실성이 많은 시대에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를 개선해 기업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야 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옳은 길”이라며 “규제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