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계 잔고장은 생산직 몫, 고치다 목숨 잃어도 기계는 안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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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2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열린 SPC 계열사 제빵공장의 사고로 숨진 희생자 추모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라고 쓰인 파리바게뜨 불매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
빵을 만드는 에스피씨(SPC)의 기계는 수없이 사람을 삼키고도 멈출 줄 모른다. 2025년 5월19일, 또 다른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여 숨졌다. 3년 사이 세 번째. SPC그룹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한겨레21이 사고 현장에 간 국회 쪽 관계자의 설명과 전·현직 SPC그룹 노동자의 증언, 유사 공정을 가진 다른 공장 사례를 두루 살폈다. 그 결과 대공장이라곤 볼 수 없는 SPC의 부실한 안전관리 체계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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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등 3대 종교인들이 2025년 5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C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고 ‘살인기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
좁디 좁은 곳에서 윤활유 뿌리다가 사고
여성 노동자 ㄱ(56)씨는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13년간 일한 베테랑 직원이었다. 2025년 5월19일 새벽 2시50분께, 그는 뜨거운 빵을 식히는 기계(‘냉각 스파이럴 컨베이어’) 옆에 있었다. 높이 3.5m의 원통형 컨베이어벨트가 빵을 한 방향으로 천천히 밀면서 온도를 떨어뜨리는 기계다. 수십 년 된 낡은 기계라 자주 삐걱거리는 소음이 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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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기계인 냉각 스파이럴 컨베이어벨트(가운데 원통형 기계). 벨트 위에 놓인 빵이 천천히 기둥을 따라 회전하며 식는 원리다. ㄱ씨는 기계 밑으로 들어가 윤활유를 뿌렸다(동그라미 표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
그날도 소음이 심했던 듯하다. 작업하던 ㄱ씨가 윤활유를 챙겨 기계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원래라면 사람이 들어가선 안 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평소에도 “삐걱대는 소리가 나면 기계 안으로 몸을 깊숙이 넣어 직접 윤활유를 뿌리곤 했다.”(시흥경찰서가 확보한 동료 진술)
ㄱ씨가 들어간 공간은 아주 좁았다. 기계 안쪽 컨베이어벨트를 지탱하는 기둥과 벨트 사이 조그만 공간에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윤활유를 뿌렸다. 자칫 옷이나 신체가 벨트에 말려 들어가면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었다. 벨트가 ㄱ씨를 덮친 건 눈 깜짝할 새였다. 동료들이 기계의 이상 소음을 듣고 뒤늦게 ㄱ씨를 발견했지만, ㄱ씨는 끝내 숨졌다. 사인은 다발성 골절(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구두 소견)이었다.
자동 멈춤 장치·무게 감지 매트도 없어
2022년과 2023년, 2025년. SPC그룹에선 벌써 세 번의 끼임 사망사고가 있었다. 모두 기계가 멈추지 않아 숨진 사건이다. 2022년 10월24일 SPC그룹 계열사인 에스피엘(SPL) 공장에서 샌드위치 속재료를 만드는 혼합기를 작업 효율을 이유로 뚜껑 없이 돌아가게 했다가 23살 노동자 박선빈씨가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숨졌다.(“12시간 근무에 빵 10만개” SPL 공장 현장의 증언) 2023년 8월8일에는 SPC 계열사인 ‘샤니’의 성남공장 치즈케이크 생산라인에서 고아무개(55)씨가 작업 동선 안에서 기계가 갑자기 작동돼 기계 부속품과 작업 공간 사이에 몸이 끼여 숨졌다.(SPC샤니 끼임 산재사의 재구성…“위험 구역에 들어가게 둬”)
이번 사고도 일상적인 작업 공간에서 발생했다. 컨베이어벨트는 사람의 옷이나 신체가 말려 들어가면 엄청난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사람의 출입을 원천 차단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멈추는 장치(‘인터록’)도 설치해야 한다.
“일단 가동 중인 설비에 사람이 들어가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고요. 정비 등으로 사람이 가까이 가더라도 무조건 설비를 세우고, 인터록 하고, 사람 무게 감지하는 매트까지 깔아놓죠. 사람이 들어가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요.”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국장의 말이다.
그런데 SPC 삼립의 사고 기계엔 인터록 장치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현장을 방문했던 5월22일에도 기계 주위로 아크릴벽을 둘러쳐놓았을 뿐이다. 심지어 벽엔 사람이 드나드는 문도 있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출입이 가능한 셈이다.
생산직 노동자가 기계 ‘정비’까지 하는 이유
불가피하게 기계 가까이 갈 땐 안전수칙이 훈련된 유지보수 인력(‘공무팀’)에 한해, 전기 공급 차단 등 사전 조치를 꼼꼼히 해야 한다. 사고 당일엔 유지보수 인력도 근무 중이었다. 그런데 왜 생산직인 ㄱ씨가 기계 안으로 들어간 걸까.
SPC그룹 전·현직 노동자들은 ‘평소에도 인원 부족 등으로 생산직 노동자들이 기계 안에 출입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분(재해자)이 직접 들어가 기름칠했다는 말 듣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어요. 왜냐면 평소에도 웬만한 건 작업자들이 다 처리하니까, 괜히 공무팀 불렀다가 별거 아니면 욕먹으니까요. 공무팀한테 전화하는 건 작업자들이 정말 하다 하다 안 될 때예요.” 전직 노동자 ㄴ씨가 말했다. 노후 설비의 ‘잔고장’이 유지보수직 정비 업무가 아닌 생산직의 일상 업무로 떠넘겨졌다는 뜻이다.
“‘화장실 교대’까지 돌리는데 어떻게 기계 멈추나”
사람이 출입했더라도 기계 전원이 꺼져 있었다면 ㄱ씨는 살았을 테다. 기계에 가까이 갈 때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안전수칙의 기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사람 출입시 기계 멈춤’이라는 안전수칙이 SPC 일터에선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손사래 쳤다. 평소에도 기계 멈춤에 따른 생산 타격을 회사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안 멈추면 징계한다’ 했으면 사람들이 왜 안 멈추겠어요? 오히려 그 반대니까, 멈추면 관리자들 다 쫓아와서 왜 세우냐고 난리를 치니까. 지금도 잠깐 기계 고장 나서 10~20분 밀리면 화장실 교대, 밥 교대까지 다 돌려서 바짝 당기는데요. 관리자들 인센티브 받는다고 매주 목표치 두세 배씩 물량 쳐내고요. 근데 개인이 맘대로 기계 세운다? 10분에 2천 개씩 올라오는 반죽이 바닥에 다 떨어져서 폐기 처분해야 하는데 어떻게 라인을 세워요. 사고 난 분도 10년 넘게 일했는데 함부로 못 세웠잖아요.” SPC그룹의 현직 노동자 ㄷ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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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주최로 2022년 10월21일 저녁 경기도 평택역 광장에서 산업재해 사망자 추모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
바닥에 흩어지는 빵 반죽보다 사람 목숨이 먼저다. 그것을 회사가 제도화했어야 한다고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국장은 말한다. “일단 최대한 사람이 거기 들어갈 일이 없게 했어야죠. 그렇게 소음이 자주 나는 기계면 교체하고, 정기 점검도 하고요. 그래도 불가피하게 사람이 들어간다? 그럼 전원 다 꺼야죠. 반죽 몇 개가 떨어지든 무조건 세우라고 원칙을 명시했어야죠. 자꾸만 노동자더러 위험을 선택하게, 갈등하게 만드니까 이런 일이 생기죠.”
게다가 사고는 피로가 누적되던 새벽에 일어났다. ㄱ씨는 12시간 주야간 맞교대 근무 중이었다. 앞서 2022년 SPL 사고도 새벽 6시18분에 일어났다. 샤니 사고 시각은 낮 12시32분이었지만, 고씨 역시 하루 11시간씩 일한 날이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이었다. 장시간 야간노동이 여러 번 문제로 지적됐지만 SPL은 ‘과로는 원인이 아니’라며 12시간 맞교대를 없애지 않았다.
사고 뒤에야 위험구역 센서·매트 조치
이런 무신경한 태도의 근간에 SPC그룹의 ‘생산 최우선’ 관행이 있다고 노동자들은 지적했다. 지난 3년간의 사망사고가 단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30년에 걸쳐 누적된 SPC 조직문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마인드를 안 바꿔요. 그렇게 사고 나도 일하는 방식 그대로, 있던 사람도 그대로, 그렇게 30년을 해왔으니까. 여론 부글부글하는 건 잠깐이고 빵은 다시 사 먹으니까.” ㄷ씨가 부연했다.
SPC 삼립은 사고가 벌어지고 난 뒤인 5월22일에야 ‘운전 중 내부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로 개선’ ‘안전덮개 안쪽 센서 설치’ ‘위험구역 주변 접근감응센서 또는 압력매트 설치’를 보완책으로 내놓았다. 모두 사고 전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이마저도 유족 앞이 아닌 국회의원 간담회 자리에서 발표했다.
한겨레21은 평상시 기계 멈춤 절차가 어떻게 마련돼 있는지, 왜 노동자의 출입을 막지 않았는지 등을 자세히 질의했다. 그러나 SPC그룹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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