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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확장 막을 한 가지 방법… 노무현이 꿈꾼 차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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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확장 막을 한 가지 방법… 노무현이 꿈꾼 차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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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단식농성장이 마련된 서울 경복궁역 인근 서십자각 터에선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각계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왼쪽 사진부터) 참여연대,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시민단체, 농업·먹거리 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시국선언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비상행동 제공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단식농성장이 마련된 서울 경복궁역 인근 서십자각 터에선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각계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왼쪽 사진부터) 참여연대,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시민단체, 농업·먹거리 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시국선언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비상행동 제공


질문. 역대 대통령 후보 중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누굴까요? “학력, 성별, 나이, 신체조건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는 법적·행정적 체계를 구축하는 등 모든 종류의 차별을 없앨 것”



정답은 2002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이회창 대선 후보. 이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노무현 후보는 학력·성별·나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형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합니다. 대선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공약이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였지요.



무려 20여년 전 대선에선 유력 후보 모두 “차별 금지”를 외쳤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발의했지만, 공약과 비교해 후퇴한 내용이라 비판받았고, 이듬해 1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17대 국회 임기 종료 직전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법 제정엔 이르지 못했어요. 보수 기독교계 일각에서 ‘동성애 옹호법’이라며 법 제정 반대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런 소란이 정치권에 먹혔기 때문이죠.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도 이때 등장했습니다. 이후 국회에선 차별금지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대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차벌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지만, 2017년 대선에선 포함하지 않았어요.





■ 이번 대선에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한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뿐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대선에 이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지난 18일 대선 후보 1차 티브이 토론에서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이걸로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어요.



특히 이번 대선의 또 다른 유력 주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차별과 혐오를 발판 삼아 후보가 됐다는 점에서 포괄적 차금법이 필요한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후보는 지난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는 죽음의 굿판” 등 과거 발언에 대해 “제 발언 중 상처 받은 분들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리겠다”고 했지만,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미스 가락시장’ 등 문제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후보가 과거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등을 상대로 한 차별·혐오발언을 모아 ‘망언집’을 내기도 했죠. 이번 대선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왜곡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준석 후보도 “(여성 대상 범죄 두려움에 대해)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거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비문명”이라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을 10년 동안 유예하자는 등 차별을 제도화하는 공약을 내놓아 노동계로부터 ‘신종 노예제도 도입’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출신국가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차별금지법과는 정반대 행보지요. 이준석 후보는 지난 27일 대선 후보 3차 티브이 토론회를 ‘성폭력 재생산의 장’으로 만들면서 화룡점정을 찍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013년 4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입법 철회 중단을 촉구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013년 4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입법 철회 중단을 촉구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 왜 지금 차별금지법인가



극구 법 제정을 반대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동성애자 옹호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만이 아닌 모든 차별을 금지해요. 동성애 등 특정 성적 지향을 권장하는 법은 더욱 아닙니다.



-‘동성애 반대’ 설교만 해도 처벌하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인데요. 자신의 믿음을 근거로 타인을 부당하게 차별하지 말라는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누군가를 무조건 우대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성별이나 나이, 학력, 종교 등 개인이 지닌 여러 정체성을 빌미로 불합리한 차별을 하지 말자는 거지요. 국회에서 발의됐던 차별금지법안들엔 차별 행위가 무엇인지, 정부·지방자치단체에 차별 예방 및 시정 의무를 지우고 피해 구제를 강화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만으로도 중대한 차별 행위는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 여성이자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를 떠올려 봅시다. 현실에서 차별은 한 가지 사유가 아닌 복합적으로 가해지는 까닭에 유엔(UN) 기구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14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2·3 내란 사태 이후 ‘극우’ 세력의 폭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법 제정을 통해 차별과 불평등에 함께 맞설 때에만 혐오와 차별에 뿌리를 둔 극우 정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장을 흘려들어선 안되는 까닭입니다. 이들이 휘두르는 폭력 뒤에는 여성, 성소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장애인 같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내재돼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들에게 더는 먹잇감을 주지 않겠다는 국가적 선언이자, 곳곳에서 횡횡하고 있는 차별·혐오 관련 규범을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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