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l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위즈덤하우스(2025) |
이 세계에서는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고독을 안고 산다. 고독은 누구에게는 사색과 명상의 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립의 고통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문제로 오면 사회 질병이 된다. 2023년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를 보니,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은 5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현실에 얼마나 가까운 숫자일까? 조사의 신뢰도를 문제 삼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목격하기 어렵고, 청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홀로 숨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김병화 옮김, 어크로스)에 나오는 말처럼, 고독은 은폐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은 마음속 외로움이 겉으로 보이지 않게 숨기지만, 은둔자들은 아예 물리적 신체를 숨긴다.
찬호께이의 ‘고독한 용의자’는 고독한 사람은 자기의 방을 자발적 밀실로 만든다는 점에 착안한 미스터리이다. 홍콩의 한 아파트, 홀어머니와 사는 한 남자가 방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 증거로 미루어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려 할 때, 옷장 안에서 사람의 절단된 부위가 담긴 유리병이 스무개 넘게 발견된다. 시체는 두명으로 추정되고 사망자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고인의 어머니는 소리친다. 20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나온 적 없는 아들이 어떻게 범인일 수 있단 말인가?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옆집 이웃 칸즈위안도 똑같이 증언한다. 사건 담당 형사 쉬유이는 당혹스럽다. 시체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그 방까지 이르렀나? 누가 잔혹하게 시체를 훼손했나? 방을 떠난 적 없는 은둔자일까? 친구가 죄를 뒤집어씌웠나? 제3의 범인이 있을까?
찬호께이가 그리는 홍콩은 한국의 현실과도 닮았다. 남과 단절되었기에 폭력에 노출되기도 쉽고, 폭력을 저지르기도 쉽다는 것이 고독한 사람에 대한 사회의 관념이다. 이 소설에서 보이는 고독의 양상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신체적 질병, 외상후 스트레스, 우울증과 사회 부적응, 가족의 상실, 그리고 극심한 학대. 사회의 썩고 곪은 상처가 개인의 고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찬호께이가 탐구한 고독에는 그 이상의 진실도 있다. ‘고독한 용의자’에는 노련한 추리소설가가 쓸 수 있는 온갖 기법이 보인다.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물이자 시체 훼손과 관련한 본격 미스터리인 이 소설에는 다중 시점을 이용해서 착각을 일으키는 서술 트릭적 요소도 있다. 독서의 흥미를 위해 문학적 기술을 펼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독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고독한 용의자’ 내에는 등장인물이 쓰는 또 다른 소설이 있다. 우리는 약자가 희생되는 추리소설을 왜 읽을까? 그럼에도 픽션에서는 가해자가 응징되어 그들이 구원받는 이상과 정의를 기대해서가 아닐까? 소설 속 작가는 그런 이상이 애상으로 번져가는 결말을 보여준다. 이것이 소설의 기능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남자가 타인과 손을 잡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 지나치게 감상적일 순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조금은 덜 고독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약간 눈물이 났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