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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순위 투수의 기적, 알고 보니 가진 게 많은 선수였다… ‘끈기’라는 재능으로 만들어낸 감격의 페이지

스포티비뉴스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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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순위 투수의 기적, 알고 보니 가진 게 많은 선수였다… ‘끈기’라는 재능으로 만들어낸 감격의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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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KBO리그 신인드래프트는 상위 순번에 뽑힌 선수들이 가장 큰 조명을 받지만, 8라운드나 9라운드 지명 선수보다는 오히려 마지막에 호명된 선수들이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도 흔하다. 일생일대의 기회와 위기의 사이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선수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가 있다.

2020년 신인드래프트의 이 마지막 순번 주인공인 인천고 출신 좌완 박시후(24)였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으로 2020년 드래프트에서 10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SK는 2차 1라운드에서 전의산을 시작으로 상위 라운드에서는 야수들 위주의 픽을 했다. 이후 중·하위 라운드에서 투수들을 뽑았는데, 박시후는 가장 마지막에 걸친 선수였다.

사실 전체 100순위라는 지명 순번이 말해주듯,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가진 게 많아 보이지 않는 선수였다. 2020년 퓨처스리그(2군)에서 33경기에 등판해 꽤 많은 등판을 했지만, 활약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2021년 2군 평균자책점은 8.44이었다. 2022년 처음으로 1군 무대에 등판하기는 했지만, 2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프로 경력 초기가 지나갔다.

구속이 특별하지 않았다. 퓨처스리그 등판에서는 평균 130㎞대 중·후반대의 공을 던지는 일이 많았다. 좌타자를 상대로 한 확실한 결정구인 슬라이더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1군에서 뭔가 중요한 보직을 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군에서도 주로 좌타자 스페셜리스트로 사용했고, 또 1군에서 그런 임무를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됐다. 하지만 2023년 부진으로 다시 1군과 멀어지는 등 시련이 많았다.


그런 박시후는 2024년 퓨처스리그에서 선발로 간혹 던지면서 야구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구속도 점차 늘어가고 있었고, 슬라이더 외에도 무브먼트가 좋은 투심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다. 2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는 선수로 키워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그렇게 2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더 이상 좌완 원포인트가 아닌 롱릴리프로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24년 2군 21경기에서 62⅓이닝, 1군 11경기에서 14⅔이닝을 던졌다.

물론 필승조도 아니었고, 그렇게 빛이 난 것도 아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플로리다 캠프에 합류해 5선발 후보 중 하나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개막 엔트리 결정을 앞두고 그 경쟁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빠른 공을 던지는 다른 투수들에 비해 그렇게 장점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내공을 갈고 닦은 박시후는, 더 이상 ‘가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은’ 100순위 투수가 아니었다. 투심과 슬라이더를 가다듬었고, 누구보다 많은 피칭을 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개막 직후 2군에 내려가기는 했으나 이숭용 SSG 감독과 투수 파트는 그 노력과 가능성을 눈에 기억하고 있었다.


박시후는 29일 인천 NC전이 끝난 뒤 “구속 부분에서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투심을 던지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이나 제1구종인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좀 잘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1군에 올라온 뒤 주로 추격주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임무를 맡았고, 좋은 성적을 내며 계속해서 기회를 연장해 나갔다. 28일까지 15경기에서 20⅓이닝을 던지며 1승2홀드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고, 대체 선발 후보로 격상되며 1군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 박시후는 29일 인천 NC전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이날 선발 김건우, 두 번째 투수 박기호에 이어 4회 2사 후 마운드에 오른 박시후는 데이비슨과 김휘집에게 각각 솔로포 한 방씩을 맞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투구를 펼치며 2⅔이닝 37구 2피안타(2피홈런) 2탈삼진 2실점 호투로 감격의 프로 첫 승을 거뒀다. 이날 대체 선발이 나선 날이라 필승조를 공격적으로 쓰기 어려웠던 SSG는 박시후가 3이닝을 가까이 먹어준 덕에 필승조는 노경은, 마무리 조병현만 쓰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2실점 이상의 값어치 있는 투구였다.

경기 후 선·후배들의 물벼락을 받으며 거친(?) 세리머니를 끝낸 박시후는 “지난번에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던 적이 1~2경기 정도 있었는데 이닝을 못 끝내고 내려갔거나 동점이나 역전을 만들고 내려가서 굉장히 아쉬웠다. 오늘 홈런을 맞았지만 야수들이 점수를 더 내줘서 운 좋게 승리 투수가 됐다”면서 “감독님도 데이비슨에게 홈런을 맞고 내려왔을 때도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네 피칭을 계속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김휘집 선수에게 홈런을 맞아도 계속 열심히 던지라고 해서 자신 있게 던지려고 했다”면서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에게 첫 승리의 공을 돌렸다.


롱릴리프 몫을 너끈히 수행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기량과 쓰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박시후는 “작년부터 2군에서 선발 투수를 해서 긴 이닝을 던지는 것은 그렇게 큰 무리가 없다고 올해도 느꼈다. 미국에서부터 피칭 개수도 굉장히 많이 해서 긴 이닝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면서 “마인드가 가장 많이 달라졌다. 시범경기 때 솔직히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코치님들이 항상 괜찮다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런 부분은 뿌듯하기도 하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 마운드에서 소극적인 느낌이 안 들어서 괜찮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만한 각오와 함께 지금까지 공을 던졌다. 남들보다 구속이 조금 느릴지 모르고, 남들보다 구종이 단조로울지는 몰라도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한 ‘끈기’를 가진 선수였다. 어쩌면 대다수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그 끈기라는 재능은 드래프트에 앞서 지명 받은 다른 선수들 상당수가 가지지 못한 1군 무대에서의 ‘승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승은 두 번째 승리로 가는 근사한 발판이 된다.

박시후는 “인복이 좋다. 진짜 여러 분들이 많다. 기회 주시는 감독님께 감사하고, 경헌호 이승호 코치님, 2군에 계시는 코칭스태프, 팀 동료들과 광현 선배님, 두솔이 형 등 야구를 하면서 되게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도 받고 조언을 듣고 내 것으로 빨리 습득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제일 감사한 것은 부모님이다. 야구를 포기하지 않게 옆에서 지지해 주셨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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