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영어 사교육업계 종사자 5명이 토론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
“영어유치원 옆에 ‘7세 고시’(유명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 준비용 ‘프렙 학원’, 그리고 그 학원을 위한 새끼 학원까지 함께 있는 게 흔한 풍경입니다.”
29일 서울 용산구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대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영어 공부방을 운영하는 장아무개씨가 말했다. 좌담회에서는 장씨 등 영어 사교육업계 종사자 5명이 영어 사교육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토론했다.
참석자들은 201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되면서 영어 조기 사교육도 심화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고3 때까지 상대평가인 수학에 많이 몰입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영어는 4학년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의 한 학원에서 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소피아(강사명)씨도 “영어, 수학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했어야 한다”며 “아이들이 지금은 수학을 70% 정도의 비중으로 공부하고 있다. 영어 조기 사교육 부담뿐만 아니라 수학 사교육 부담도 함께 늘었다”고 말했다.
학생 변별력을 키우겠다며 수능과 고등학교 내신 시험을 학교 수업 내용보다 훨씬 어렵게 내는 것도 사교육 유발의 원인으로 꼽혔다. 사걱세가 영어책의 읽기 난이도 지표인 아토스(ATOS)지수를 활용한 결과,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독해 부문 난이도는 미국 6∼8학년(한국 초6∼중2) 수준이지만, 2025학년도 수능 영어 독해 지문은 평균 미국 9학년(한국 중3) 수준이었다. 또 최고 난도 지문은 미국 12학년(한국 고3) 수준을 뛰어넘었다. 서울 대치동의 정영어학원 남기정 원장은 “강남권 고등학교 내신 출제에 활용되는 부교재는 미국 고3 수준인데, 학교에서는 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고 했다.
더욱이 시험을 위한 영어 사교육 시장 확대에도 학생들의 실제 영어 실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장씨는 “학원에서 아이들 문해력이 떨어져 영어 지문을 한국어로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며 “독서 습관을 통해 한글 문해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고 했다. 공교육에서의 영어 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설 학원에서 공급하고 있는 교과서나 학교 부교재의 분석서를 국가가 구매해 보급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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