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통령선거 티브이(TV)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대통령선거 방송 토론회를 지켜보던 나는, 한 장면에서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향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던진 질문, 성폭력을 암시하는 혐오 표현으로 구성된 그 질문은 단순한 돌발적 언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의 탈을 쓴 정교한 혐오의 연출이었고, 대중의 분노를 겨냥한 선동이었다. 이 장면은 정치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폭력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그것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공론장으로 끌고 나와 상대 후보를 음험하게 암시하고, 권영국 후보에게 미끼를 던져 이재명 후보를 낚자는 방식은 아주 ‘고급진’ 혐오의 기술이었다. 젠더 갈등을 자극해 반사이익을 챙기겠다는 냉소적 계산까지 읽히는 이 장면에서, ‘정치가 이럴 수도 있구나’ 탄식이 나온다. 한때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청년 정치의 희망처럼 주목받았던 인물은, 바로 그 장면 하나로 개혁보수의 정체성을 찢어버렸다. 더 놀라운 건, 이후의 대응이었다. 그는 토론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적 혐오 표현에 대한 기준을 묻기 위한 질문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토론장에서는 공격하고, 방송 밖에선 변명했다. 그러나 이 양면적 태도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결코 이 문제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에도 분열과 갈라치기의 정치를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발언이 단순히 논란을 넘어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법과 형법의 경계선에서 이 사안이 다뤄질 가능성이 있으며, 수사 기관의 법리 해석 여하에 따라 이준석 본인의 정치생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토론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피해 서사’를 들고나왔다. 나이가 어려서 정치권에서 차별을 당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주목을 받았고, 정치적 경륜이나 조직 운영 능력과는 무관하게 거대 정당의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혜택을 누리고도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는 이 전략은, 정치의 병리학적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나이가 아니라, 그의 태도다. 피해의식을 부풀려 자기 연민을 정치 전략으로 삼고, 그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끌어내리는 정치, 그것은 결국 자기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때 대표직에서 쫓겨나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 개혁보수를 외치던 때는 그런 전략이 나름 통했지만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전략은 다름 아닌 윤석열의 길이다. 피해의식이 분노로 폭발한 지난해 내란의 밤에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이 혐오 발언이 곧장 이준석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준석 후보는 혐오와 차별의 전염성으로 더 많은 지지층을 결집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지지의 성격이다.
지금 이준석 후보를 중심으로 결속하는 유권자들은 누구인가. 여성 혐오와 사회 갈등을 일상의 언어처럼 소비하는 일부 청년 남성 중심의 세력이며, 극우 커뮤니티에서 그 환호의 기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그 세계의 환호를 정치적 정당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말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만든 늪에 빠졌고, 그 환호가 사라지는 날, 그는 더 깊은 심연으로 추락할 것이다. 권영국 후보의 말을 빌리자면, “40대 윤석열”이 탄생한 순간이다. 혐오를 정치 동력으로 삼는 극우 대중 운동의 다음 화신이 이준석일지도 모른다. 이는 경쟁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한국의 교육제도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흐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발언에 분노한 여성 유권자들과 진보 시민사회가 빠르게 결속하고 있으며, 방송 직후부터 이준석 후보를 향한 고발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탄핵 국면에서 윤석열을 향하던 광장의 외침이 이제는 이준석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여론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한국 사회의 도덕 감수성과 정치 윤리를 시험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혐오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리고 우리가 어떤 정치 문화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준석은, 앞으로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늘 그렇듯 언론 탓을 하고, 왜곡을 말하고, 자신의 진심은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다시 묻고 싶다. 이 파국의 정치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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