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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애잔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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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애잔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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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여행의 세 번째 나라 아르메니아 국경마을 사다클로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조지아에서부터 타고 온 버스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향했다.

인솔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아르메니아는 '애잔한 나라'라고 소개 한다.

'애잔한 나라?' 궁금증을 갖게 한다.

버스는 비포장 길을 덜컹거리며 간다.

흡사 유년 시절 학교 가던 신작로 길을 닮았다.


미루나무 가로수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늘어 서 있다.

길가의 집들은 허름한 벽돌을 쌓아 함석지붕을 얹은 모양이 꼭 우리나라 60년대 풍경 같다.

정겹다고 하기엔 왠지 서럽게 다가왔다.


그래서 '애잔한 나라'라고 했나?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 남한의 1/3크기로 인구는 약 300만이다.

그중 150만 인구가 예레반에 모여 산다.

이곳은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덕분인지 국경에서 들어올 때 모습과는 다르게 북적거리고 활기찼다.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정한 나라이다.

성 그레고리에 의해 세워진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이 나라 최초의 교회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성물박물관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롱기누스'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온 돌판 위에 붙여놓은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다.

하늘이 우리나라 가을 하늘처럼 맑고 성당의 분위기는 조용하다.

아마 천국이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성당 뜰에서 멀리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아라랏트산이 보인다.

해발 5천165m의 높은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떠내려가다 마지막에 멈춘 곳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노아의 후손들로 모두 이산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 같았다.

아라랏트산은 화폐에도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부터 마켓, 호텔 등 상호에서 쉽게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이 민족의 영산으로 사랑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라랏트산은 국경 넘어 튀르키예와 이란 땅에 있다.

코르비랍수도원에서 바라보면 아라랏트산 아래로 튀르키예와의 국경이 보인다.

마치 우리가 백두산을 우리나라 영산이라고 하지만 직접 갈 수 없고 중국을 통해서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아르메니아를 애잔한 나라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르메니아는 숱한 전쟁과 분쟁으로 국토의 1/4을 잃었고, 1915년에 튀르키예에 의해 150만명이 학살되고 80만 명이 추방당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민족의 영산인 아라랏트산마저도 튀르키예의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침부터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머릿속은 물론 입속을 맴돌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의 뜻을 가진 단어다.

아르메니아 인구는 300만이지만 디아스포라로 해외에 사는 인구가 800만이라고 한다.

그들은 해외에 살면서 전쟁이 나면 고국으로 돌아와 전쟁에 참가한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수도 예레반에는 그들에 의해 기증된 중요 건물과 예술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예레반의 랜드 마크인 케스케이드는 7층 규모로 500여 개의 계단과 층마다 작은 폭포들이 물을 품어 내고 있다.

이곳은 알렉산더 타마니안의 작품이다.

그는 케스케이드에서 예레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시내 어느 곳에서도 아라랏트산을 볼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했다.

바로셀로나를 가우디의 도시라고 하면, 예레반은 알렉산더 타마니안의 도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기증한 개인 소장품과 성금으로 케스케이드가 멋진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더 남달랐다.

버스를 타고 이동 중 언덕 위 국립묘지가 눈에 띄었다.

오래되지 않은 묘비들이 많이 보인다.

특이하게 시내 건물 벽에 젊은이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내에 고립된 니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는 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아르메니아를 떠날 때, 공항에서 멀리 아라랏트산이 보인다.

마치 부모님의 품처럼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이 나라를 품어주고 있는 듯하다.

장용숙 수필가 아침뜨락,장용숙